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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Sep 29. 2020

달빛을 걸어가며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산봉우리의 능선과 나무들만 실루엣처럼 음영을 이루고 있다. 이 곳 어둠에서는 도시의 휘영 찬란한 불빛이나 거대한 고층 빌딩, 오가는 수많은 군중들이 서 있을 곳이 전혀 없다. 


오직 나와 저 밤하늘 위에 떠 있는 달만이 서로를 향하여 마주 보고 있다. 시끄러운 자동차의 소음도 사라진 침묵의 어둠이다. 


고요한 산속의 밤이 되자 비로소 도시의 출렁거리는 물속에서 시끄럽게 허우적대던 내가 서서히 본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모습 그대로 나와 저 밤하늘의 달이 서로 대면한다. 낮의 태양이 발하는 강렬한 광선의 반작용도 없다. 지긋이 고개를 들고서 저 은은한 빛을 발하는 달을 향하여 한발 짝 한발 짝 다가 서기만 하면 된다.


나의 어디엔가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영혼이 잠잠히 심연에서 떠올라 그의 초청 속으로 걸어간다. 사방에 둘러싸인 어둠이 길을 안내해 준다.


어서 오라며 은근한 달빛을 보낸 그가 내 영혼에 손을 내민다. 그리고 포근히 감싸 준다. 이 모습 그대로다. 낮에 눈부시게 나를 주시하던 세상의 소리도 모두 어둠 속에 다 묻혀 버렸다. 오직 나와 그만이 남아 있다. 


그가 낮의 활동으로 얼룩진 때들을 은은한 달빛으로 조용히 씻어 준다. 눈부심도 없는 순전한 달이 되어 내 영혼이 밤하늘에 영롱하게 떠 있다. 옆에 서 있는 그가 흡족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강렬한 해가 비치는 낮의 세상으로 다시 가더라도 언제든지 밤의 달빛 길을 따라 다시 오라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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