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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Nov 15. 2020

늦가을 나무야

지난여름 나무는 작렬하는 뜨거운 햇볕을 녹색 잎들로 기꺼이 받아내며 시원한 녹음의 그늘을 주었다.


그러다 10월 내내 온 산을 빨강과 노란 빛깔로 진하게 물들이더니 11월에 들어서는 슬며시 사그라지는 저녁노을의 잔상처럼 여기저기 사방에 낙엽의 추억들을 남겨 놓았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화려한 변화의 섭리이다. 어느새 잎사귀를 다 떨구어 내고 하늘 아래 오롯이 자신을 묵묵하게 드러내며 당당하게 서 있다.


산길을 오른다. 나에게서 쏟아져 나온 셀 수 없는 기쁨, 슬픔, 아픔의 추억들이 낙엽으로 수북하게 쌓여 있다. 


가슴에 살며시 다가오는 갖가지 추억의 소리들을 들으며 한 발짝 한 발짝 낙엽 위로 걸어간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본다. 


늦가을 나무가 추억의 흔적들을 땅 밑으로 사뿐사뿐 하나 둘 벗어 내버리고 부활을 빚어내는 동면의 세계를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다.


세찬 겨울을 지내기 위해 맨 몸으로 부대낄 태세다. 두터운 나무껍질로 거친 차가운 겨울바람을 힘껏 맞설 준비가 되어 있나 보다. 


산길을 내려온다. 아스팔트 길가에 황금빛 은행나무 가로수가 양쪽으로 화려하게 줄지어 서 있다. 눈이 부시다. 


아직도 힘껏 나무에 붙어 있는 잎들이나 이제 힘이 부쳐 아래 땅으로 귀향한 잎들이나 모두 매 한 가지로 황금빛을 발한다. 지난 계절을 보내고 피어낸 영광의 흔적이다. 


은행나무 잎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걸어가는 이들의 가슴마저 황금빛으로 물든다. 


웃고 울며 보냈던 어제의 상처와 기쁨의 추억들을 영광의 이파리로 빚어내던 늦가을 나무 하나가 저만치서 내게 다가온다. 


추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다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당당한 나무가 되자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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