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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Dec 02. 2020

희망의 연 날리기

바삐 추운 겨울로 들어가는 이른 새벽이다. 밖은 여전히 여명의 해가 떠오르기를 지체하고 긴 밤의 끝자락 어둠이 창밖을 지키고 있다. 


새벽의 고요함에 어린 시절 연 날리던 추억이 긴 실타래를 타고 내 마음에 찾아 왔다. 


어릴 적 함께 놀던 고향 마을의 놀이동산이 떠오른다.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눈 아래쪽으로 널찍한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겨울철이라 논에 있던 벼들도 다 수확되고, 검정 찰흙 논바닥들이 속을 드러내며 구불구불 논두렁과 함께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또래 친구들은 겨울철이면 이곳에 올라와 저 들판을 향해 드높이 연을 날리며 놀곤 했다. 


우리가 날리던 연은 보통 두 가지였다. 


가장 흔한 연은 ‘가오리’ 연이다. 가오리 모양에 종이 꼬리를 길게 붙여 만드는데 그 모양이 영락없이 가오리다. 


다른 하나는 ‘방패’ 연이다. 사각형 모양을 약간 구부린 것인데 마치 창에 대항하는 방패 모양과 같아서 ‘방패’ 연이라고 불렀다.


손재주가 없던 나는 방패연은커녕 쉬운 가오리연도 만들지 못했다. 연날리기를 하고 싶으면 또래 친구 기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는 만들기를 참 잘했다. 물총, 새총, 썰매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의 손에 가면 모든 것이 뚝딱 나왔다. 마음씨 착한 그가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 동네 아이들이 한데 모여 놀이동산에 올라 제 각기 만든 연들을 하늘 위로 높게 날렸다. 


연을 날릴 때는 바람을 잘 타야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연에게 압력이 느껴질 때는 살살 얼레에 감긴 실타래를 풀어 바람의 흐름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실타래 풀기를 조금이라도 늦게 하면 하늘의 연은 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하기 시작한다. 긴 꼬리가 붙어 있는 가오리연은 꼬리가 중심을 잡아 주기 때문에 그나마 낮다. 


하지만 꼬리도 없는 단순한 사각모양인 방패연은 중심을 잡을 만한 것이 없어 자칫하면 그냥 땅바닥으로 급전직하 추락하기 쉽다.


좌우로 기우뚱하는 방패연을 날리는 고향 친구들이 실타래가 감겨 있는 얼레를 이리저리 놀리며 높고 넓은 하늘을 마음껏 향유하였다.


가끔은 실타래가 끊어진 연들이 우리 곁을 떠나 한참 동안 겨울 하늘 저 멀리까지 떠다니다 겨울 논바닥 한가운데로 스르르 가라앉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떨어진 연을 찾으러 무리를 지어 추운 들판을 힘차게 걸어갔다. 


아직 가녀린 어린 친구들은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들판에서 찾은 연을 들고 돌아오는 고향 친구들의 손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미래를 향한 꿈과 열망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멀리 들판에 떨어진 대나무 연을 찾아 나서듯, 중년의 길을 걸으며 내 마음의 들판에 남겨진 아름다운 희망의 연을 찾는다. 


오손도손 얽어낸 많은 꿈과 희망의 이야기들이 지나온 삶의 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부모님이 생전에 베풀어 주셨던 사랑, 형제자매의 우애, 아내와 어린 두 딸과의 따뜻한  행복, 친구들의 우정, 이웃들의 친절, 고객들의 신뢰로 가득한 삶의 연이다.


다시 실타래로 하늘에 연을 날리고 싶다. 뭉클한 가슴에서 시작되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실타래로 말이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빛이 아침을 데리고 오기 전의 새벽하늘에 연을 높이 날려 보낸다. 얼레를 꼭 부여잡고 하늘의 연을 바라본다. 가슴에 새겨진 꿈과 희망이 하늘을 드높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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