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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Dec 18. 2020

칼바람을 이겨낸 문풍지의 사랑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이하이다. 우리나라 겨울철이면 이 정도는 보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막상 집 밖을 나가보면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늦은 저녁 따뜻한 집안 거실에 가족과 둘러앉아 편안히 TV를 보고 있었다. 집 바깥엔 추운 칼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TV에서는 어느 건축가가 특이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집의 건축 구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내용이 신선하여 우리 가족이 매우 좋아한다.


어느 50대 부부가 서울 종로구의 84년 된 낡은 한옥을 사서 살기 좋은 집으로 탈바꿈시키는 스토리였다. 부부는 한옥의 기본 틀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한 채 집 여기저기를 요모조모 깔끔하게 수리를 매우 잘해 놓았다.


집에 있는 문들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84년 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내 부모님이 어린 나이였을 그 시절에 집의 문을 유리창으로 만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부부는 한옥 거실의 중간 어느 부분만 특별히 창호 문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마 그 부분은 이미 유리창이 깨어졌거나, 아니면 조그만 공간이라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창호지를 꼭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창호 문을 만들어 놓고 그 부부는 창호지가 찢어질까 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손님들도 조심시킨다고 했다.  


어느새 내 마음은 추위를 뚫고 창호 문으로 만들어진 어린 시절 내 고향 집으로 날아갔다.


고향집은 TV에 나오는 멋진 기와집은 아니었다. 가을 들판에서 자란 벼를 베어 탈곡한 후 볏짚을 엮어 지붕을 덮어 놓았다. ‘기와집’이 아니라 ‘볏짚 집’이었다. 당시에 마을 대부분의 집이 이렇게 투박하게 만든 볏짚 집이었다.


어느 집에 불이라도 나면 볏짚으로 만든 지붕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특히 불 지필 일이 많은 추운 겨울철에 불이 잘 났다. 


조그만 언덕배기 동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마을의 초입에 유일한 우물터가 있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불을 끄기 위해서는 그 우물터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불난 집에까지 운반하여야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물 샘터부터 시작하여 불난 집에까지 오르막길 언덕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줄을 섰다.


우물터에 있는 사람들이 바쁘게 물을 퍼서 양동이에 담으면 그다음 사람이 그 양동이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옆 사람에게 전달하였다. 


크고 작은 양동이가 동원되었다. 작은 양동이는 나 같은 어린아이도 들 수 있어 어른들 사이에 끼어 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불난 집 때문에 마을에 일종의 대동 행사가 벌어진 셈이었다.


볏짚 집이라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한 지붕을 새로 단장하여야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시 지붕에 올릴 볏짚을 엮느라 바빴다.


나와 고향 어린 친구들은 동네 어른들이 한데 모여 볏짚을 엮는 모습에 괜히 신이 났다. 어른 주변을 서성거리다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신나게 거들어 주었다. 


불난 집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이렇게 동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합쳤다. 차가운 겨울 들판을 휘저으며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도 동네 사람들이 힘껏 엮어낸 볏짚의 따뜻함을 뚫을 수는 없었다.


우리 집 방문은 창호 문이었다. 


테두리를 나무틀로 만들고, 나무틀 안쪽은 다시 많은 개수의 사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에 한지 종이를 붙여서 창호 문을 만들었다. 


두 개의 창호 문이 겹치는 지점은 겨울바람이 차갑게 방 안으로 들어오기 쉬웠다. 그래서 창호 문 테두리를 따라 길게 종이를 붙여 놓았다. 그렇게 문풍지가 만들어졌다.


역시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는 유리문과는 많이 달랐다. 두 개의 창호 문이 야무지게 딱 들어맞지 않아 문을 열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방안에 가만히 있으면 창호 문 바깥쪽에 매달려 있는 문풍지가 바람에 위태롭게 펄럭대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문풍지라도 달아 온 가족이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애쓴 것이었다.


창호지로 붙인 종이는 유리처럼 강한 것이 아니었다. 창호 문 여기저기 쉽게 찢겼다. 찢어진 틈새로 겨울바람이 차갑게 방 안으로 쳐들어 왔다. 


종이가 흔치 않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어머님은 창호지도 아니고 색깔도 맞지 않은 종이를 구해 풀칠을 한 후 찢어진 창호 문을 여기저기 다시 덧입혔다.


창호 문을 바깥쪽에서 바라보면 조화되지 않는 투박한 종이들이 더덕더덕 창호 문에 붙어 있었다. 어울리지 않은 이 모양 저 모양의 사각형들이 이리저리 어질러진 것 같았다.


겨울철이면 어머님은 그렇게 풀칠을 여러 번 했다. 가족들이 잘못하다 창호 문을 잘못 건드려 창호지가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겨울철 어느 날 마을 사람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따뜻한 방 안쪽에 있던 나는 창호지가 불투명이기 때문에 바깥사람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 경우에는 손에 침을 조금 묻혀 손끝으로 문의 창호지를 문지르면 살며시 조그만 구멍이 난다. 그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면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손쉽게 알 수 있다. 어떤 때는 그냥 재미가 있어서 구멍을 내기도 했다. 


내가 낸 구멍 때문에 방안으로 바람이 송송 들어왔다. 당연히 어머님께 야단을 맞았다. 어머님은 다시 풀칠을 했다. 


4남 1녀의 형제자매와 부모님은 문풍지 날리는 창호 문을 방패 삼아 추운 겨울철을 이렇게 보냈다. 5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어린 시절 이야기다.


온난한 기운이 감도는 따뜻한 거실이다. 아내와 두 딸은 TV 속에 등장하는 부부의 가정생활과 잘 개조된 한옥 집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TV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오순도순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80년 넘은 한옥에 밴 긴 사랑의 역사를 오늘의 그 부부가 잘 간직하여 현재의 삶에서 다시 재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깊은 밤으로 흘렀다. 아내와 두 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뜻한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행복하게 TV를 보고 있다. 


거실 밖은 그때나 지금이나 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창호 문에 덩그러니 매달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던 자그만 문풍지가 겨울철 칼바람을 얼마나 막아 주었을까? 


자식들과 따뜻하게 겨울철을 나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가냘픈 사랑의 흔적이 문풍지를 흔들며 내 가슴을 진하게 스쳤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 주신 문풍지의 사랑으로 아내, 두 딸과 함께 차가운 겨울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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