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그를 Monster라고 부른다
우리는 결혼 후 결혼 전에는 몰랐던 서로의 모습들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1년을 만났던 10년을 만났던 결혼 후에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들어맞는다. 나는 그와의 1여녀 간의 열애 뒤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에도 그는 침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Well organizer의 성향이 강한 나와달리 창의적이지만 뭔가를 오랜시간동안 차분하게 해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성향이다. 그런데 웬일. 결혼을 하고 보니 정말 그는 disorganized person의 끝판왕이다. 그래도 연애 때 내가 본 그는 어느정도 노력한 부분이 없지않았던 것 같다.
우리집에 살고 있는 Mr. Monster로 말할 것 같으면, 외출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양말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거나, 본인의 물건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금방 까먹거나, 발에 크림을 바르고서는 밤새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녀 마룻바닥에 footmark를 남겨두는 다소 특이한 성향을 갖고 있다. 원래부터도 청소나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Monster의 흔적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두 제위치에 두고 정리하면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하하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신방잘 아래에서 돌돌 말려진 양말이 한세트씩 나올 때는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부분들이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지만, 육체적으로 내 일을 2-3배씩 늘린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2개의 직업을 갖고 있고, 가끔 프리랜서로 파트타임의 프로젝트들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일 자체의 양이 많다. 그런데 여기의 내 개인용무 그리고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그의 한국에서의 용무를 처리하고서 집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 한 타이밍이 오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요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모든 걸 내가 해내려는 성향들도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면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빵"하고 터지는 것 같다. 이 순간이 오면 우리집에 살고 있는 Monster는 직감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양말도 laundry basket에 차곡차곡 잘 갖다 넣고, 설거지도 깨끗하게 한 번씩 해두기도 하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making bed도 아주 열심히 한다 하하.
이런 상황들이 한 두번 반복되니, 이제 우리 부부도 이런 "빵"의 순간은 지혜롭게 막거나 지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난 이런 힘든 순간이 오기전에, 내가 시간이 없거나 바쁘니 도와달라는 SOS를 좀 더 자연스럽게 해가고 있고, 우리집 Monster 양반도 한국에 올 때에는 한국 집의 사양(?!)에 따라 미국보다는 조심스럽게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 집은 단독 주택의 형태가 많아서, 아파트나 콘도 스타일에서 사는 것이 익숙하지 못하다. 2층 계단에서 1층으로 쿵쾅거리면 질주하던 그가 한국 아파트에서 뒷꿈치를 들고 살포시 걷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도 scheduling management / task management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생겨가고 있다. 난 원래도 Project management가 내 일이기 때문에 여러 일들이 있을 때 이것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하나씩 list out 해가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닥치는 일대로 진행하고, deadline이 있는 일들은 끝까지 남겼다가 처리를 하다보니, 본인의 이런 성향을 조금씩 고쳐가는 중이다.
원래 성향을 모두 다 고칠 순 없지만, 서로 맞춰가며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결혼 생활인가 보다. 난 오늘도 Mr. Monster와의 여정을 잘 항해해 보기위해..일단 빨래부터 해본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