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크게 "친구"라는 단어에 연연해 하지 않았고 (본래 사람에 크게 관심이 없는 타입), 크고 나서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살고싶은 이상한 역마살 탓에 인생에서 깊게 사귄 친구가 많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살갑게 대하며 먼저 잘 다가가는 타입도 아닌데다가, 난 무지하게 워커홀릭이었다.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밤 10시까지 사무실에 짱박혀서 공부도 하고, 일도하고 혼자 사부작 사부작 프로젝트도 따로 해보고 이런 걸 워낙 좋아했어서, 더 사무실 외에서 친구를 사귈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20대 후반쯤 되었을 때 아주 좋은 친구 둘이 생겼다. (물론 우리는 회사에서 만났지! 하하) 우리 셋은 성향도, 좋아하는 것도 참 다른데, 공통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비슷한 나이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와 과정은 다르다. 누군가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대가 있고, 누군가는 연애에 누군가는 또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며 그 만의 시간을 살아가니까. 우리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서로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만나면 나의 이야기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남편, 남자친구, 아기 이야기는 없다. 나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나와 연관된 누군가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 관계속에서 내가 느끼거나 내가 깨달은 바를 이야기 하지만, 그 연관된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미묘한 다름이 있다. (아, 회사욕은 가끔 하는 편이다 하하)
지금은 내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게 되어서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밖에 보지 못하지만, 언제나 전화를 해도, 영상통화를 해도, 만나도 한결같이 반갑고 부담없고 응원해 주는 그런 관계. (티셔츠 하나에 트레이닝 바지 입고 나가서 만나도 눈치 안보고 편안하다.) 이번 주 주말에 오랜만에 한국에서 그 친구들을 본다. 우리의 인생에 풍파들이 우리의 관계에 금을 주지 않을 만큼 편안하게 잘 지나가서, 오랜 후에도 만나면 여전히 반갑고 그리운 친구들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걸 보니, 이것만큼 또 큰 행운이 없는 것 같다.
사람 사귀는 걸 잘 못하는 나에게 이 두친구들이 행운처럼 와주어서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