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가를 때의 문제점과 의미있는 노인의 기준에 대하여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자리에 가서 강의나 발표를 해야 할 때에는 '노인은 증가된다', '고령화가 예상된다' 라는 내용을 도입부에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하지 말라고 한다. 논문을 쓸 때에도 제발 '우리나라의 65세 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도달하였고..' 이런 이야기를 첫 문장으로 쓰지 말라고 한다.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지만, 이미 극히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사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노인의 기준을 65세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 주로 복지 비용이나 은퇴 연령을 이야기할 때 - 나온다. 기존에는 15-64세 인구를 '생산가능연령'으로, 65세 이상을 '노인' 으로 정의하였는데, 이 숫자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제를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뭔가를 자를 숫자로 표현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대 산업 사회의 아주 지배적인 관점인데, 어떤 평균적인 값에 세상의 정책과 원칙을 적용해 나갈 수 있다는 헨리 포드적인 관점의 지속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8년여 동안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건강상태에 따라 어떠한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지를 연구하면서(역학epidemiology에서는 이것을 코호트cohort 연구라고 한다) 확인하게 된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다 똑같은 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의학적 관점에서 신체 기능과 질병 상태, 사회적 지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허약(frailty) 정도를 추정할 수 있게 되고, 이 정도는 생물학적 노화 정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숫자 나이와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허약의 정도를 바탕으로 추산한 생물학적 나이가 인구 집단에서는 사망, 독립적인 일상생활 수행 능력의 저하에 따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입소, 낙상의 발생, 의료 이용을 상당히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숫자 나이와 신체 나이(신체기능)의 괴리 현상이 관찰되는 영역은 대략 숫자 나이로는 60대 후반~ 80대 중반 정도까지가 되는데, 이 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다시 신체기능은 숫자 나이를 잘 추종하게 된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동년배보다 생물학적, 신체적 노화 정도가 심했던 사람은 그 즈음에는 세상을 모두 뜨게 되어서 그런 부분이 있다 (이를 생존편향selection bias라고 한다).
따라서,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집단은 사실은 활동 정도, 내수 소비 여력, 의학적/사회복지 측면에서의 돌봄 요구가 무척이나 다른 여러 차원(축)의 스펙트럼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아직까지는 인구 정책이나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관료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연령별 인구 믹스와 신체 나이/생물학적 나이를 반영한 인구 믹스의 시계열적 변화를 꾸준히 지켜 보고 있는 노인의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에는 상당히 웃픈 이야기들이 오가고, 실질적으로 잘못된 정책들이 그려지고 있다.
대략 사회적, 신체적 활동 정도를 놓고 이 글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인구집단만으로 분류를 해 보려 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급격한 고령화의 주역은 베이비 부머이다. 이 때문에, 65세 이상으로 '노인'인구를 정의했을 때에, 지난 10년간 가장 빠르게 증가한 부분은 가장 젊고 건강한 '노인'이고, 이들은 1-2개의 만성 질환을 갖고 있지만, 50대와는 거의 비슷한 삶의 방식을 영위한다. 이들을 '(1)건강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걷는 속도나 쥐는 힘이 약간 떨어지고, 병원에 입원도 몇번 경험하여 아무래도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은, 그래서 소비나 사회 활동도 많이 줄어든 '(2)허약전단계(prefrail) 그룹'이다. 신체나이나 생물학적 나이로 75-84세 정도가 된다. 한번 큰 병치레를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 다음은 '(3)허약(frail)그룹'인데, 이미 장기요양 보험 등급 평가를 받았거나, 받을 것을 고려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집에 기거하거나 그렇지 못하게 되면 요양원, 요양병원에 곧 입소할 가능성이 높은 인구집단이다.
의학적 발달과 58년생에 첫 피크를 이루는 인구 피라미드의 형상 탓에, 지금은 (3)허약그룹의 증가율(%)이 가장 빠르고, (1)건강그룹의 연간 증가(명/연)가 가장 많다. 따라서, 지금은 (1)건강그룹 덕에 액티브 시니어가 내수의 중요한 아젠다가 될 수 있고, 서울의 집값이 내려가기가 쉽지 않고, Z세대는 취직이 어렵지만, 앞으로는 (3)허약그룹의 증가로 장기요양보험에 문제가 생기고, 사회적 돌봄요구가 급증하고, 우리나라의 내수는 성장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인구 믹스 내의 동역학을 보지 않고, 65세 이상의 특성을 고정시킨 후에 시간으로 외삽을 하는 습관 때문에, 어찌 보면 모든 문제가 생긴다.
먼저 사회 현상들의 변화이다. 연령주의(ageism)가 듬뿍 담겨 있는, 웃픈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2016 한국의 사회동향(통계개발원), 노인 범죄의 실태와 변화에는 61세 이상 노인 형법범죄자의 '증가폭'이 전체 형법범죄자의 증가폭보다 더 큰 것으로 시작하여, '노인'이 저지르는 범죄의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인구 믹스에서 (1)건강그룹이 지난 10년간 가장 빨리 늘었으므로, 노인인구 숫자로 보정을 하더라도 형법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의 집단이 크게 늘었고, 당연히 노인 형법범죄자의 증가폭은 높을 수 밖에 없다. 베이비 부머가 (3)허약그룹으로 이행하는 2030년이 되면, 갑자기 우리나라의 노인이 착해져서, 인구로 보정했을때 노인 형법범죄자가 줄고 있다라는 보고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20년대 복지 정책이 우수해서 그렇다라는 분석을 누군가는 할 지도 모른다.
내수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2010년 이전의 '노인'인구 믹스에 비해 2020년까지는 (1)건강그룹이 빠르게 늘어나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급 자동차, 고급 주택, 골프장, 액티브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기능식품 및 일반식품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고령층이 내수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그룹은 점차 (3)허약그룹으로 이행하여 갈 것이므로, 우리는 앞으로 10년 후 부터는 일본보다 더 빠른 일본화(japanification)을 목도할 가능성이 있다. 인구 요인만 놓고 보았을 때에, 한우의 가격 상승률이 처음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낮아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 관리 정책은 상당히 뒤쳐진 편인데, 국내 인구의 구조 변화 탓(덕)에 의외로 탄소 중립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의 상당 부분은 수출과 관련된 제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장기적으로 내수를 기반으로 한 탄소 발자국 또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아직 국내에서 노인인구 믹스 내의 숫자나이나 신체나이에 기반한 탄소 발자국 추계 연구는 없으나, 해외의 몇 안되는 연구를 살펴보면 60대 말 까지는 탄소 배출이 줄지 않다가 70대가 되면서는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므로 이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70대 이상 인구의 급증이 예상되고 있는 2020년대 후반부터는 저절로 BAU(business-as-usual) 추계 대비 탄소 배출이 감소될 것이 예상된다. 여러가지 어려운 사회 환경과 정부 정책에 의하여 저위 가정을 뚫고 추락하는 출산율조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고,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더해져 우리는 이미 탄소 피크를 지나왔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 본다.
의료와 복지 돌봄 시스템에 대한 수요-공급 괴리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 관리는 우선 어떤 조치와 그 결과 발생에 많은 시간 지연이 존재하는 특징이 있는데, 거시적 측면과 미시적 측면 모두에서 그런 현상은 나타난다. 거시적으로는, 어떤 요구를 인지한 후 국가적 돌봄 시스템을 구상하고 소규모 시범 사업을 통해 대규모 스케일로 적용하는데도 10년 이상의 지연이 있게 된다. 미시적으로는, 예를 들어 30대에 열심히 망가뜨린 몸이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무려 30년의 지연이 있다 (워런 버핏이 이야기하는 투자의 복리 효과와 비슷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의료, 복지 돌봄 시스템은 위 그림에서 보이는 '만성 질환 치료의 중요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 85세 이상 그룹, 또는 (3)허약 그룹의 증가율(연간%)이 전체 노인인구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치매라는 개별 질환에 대한 예산 편성(치매관리종합계획) 외에 다중이환(multmorbidity, 여러가지 만성 질환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허약, 기능저하가 섞여 있는 이 인구집단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돌볼 지 지금부터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세월은 속일 수 없지만, 노인은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그리고 노인은 숫자 나이만 많은 젊은 성인도 아니다. 나와 남의 신체 나이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걸맞는 건강 증진 전략과 사회 복지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앞으로 10년간 빠르게 변화하게 될 우리나라 '노인'인구 믹스의 동역학을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