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일 Apr 11. 2017

미디어 3.0 시대의 퍼블릭 액세스

"나에게 말해줘, 사실을 말해줘, 정말 네 마음을 말해줘."

출처 : flickr.com - cea +

1.0 들어가며


1.1. 이 글의 방향

  새로운 매체를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매일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매번 유행을 따르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기존 매체 중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다수의 선택을 받은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관습과 타성에 젖어 나날이 진화하는 미디어 소비자들을 등한시하기 쉽기 때문에 무작정 전통만을 고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선 미디어의 속성과 최근의 변화되는 환경을 간략히 소개하고, 주목받는 몇몇 기술의 장점을 기존 활동에 적용시켜 보는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1.2. 새로운 시대의 도래

  컴퓨터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버전이란 구분법이 있다. 거대한 변화가 있으면 1,2,3의 순서로 버전의 숫자가 올라가고, 소소한 변화가 있으면 소수점 자리의 숫자가 올라간다. 인터넷 환경의 변화에도 그런 호칭을 접목시킨 사례가 있다. 위키피디아 사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집단지성이 발현되고 지식의 공유가 활발히 일어난 2000년 무렵의 인터넷을 ‘웹2.0’이라고 호칭한다. 기존 인터넷 사용환경이 ‘웹1.0’이 된 건 당연한 수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웹3.0’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검색하기 전에 이미 사전에 파악하고 있던 그들의 사용습관과 취향을 반영한 결과를 빠르게 제시하는 시맨틱 검색이 대표적인 예이다. 스티브 잡스의 ‘(우리가 제품을 직접 보여주기 전까진)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공하는 웹3.0 시대는 앞으로 빅데이터라는 무기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리라 예상된다. 이런 구분법을 일종의 마케팅 용어라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터넷 환경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적절한 활동 방법을 준비하는 데에 이런 구분법이 도움이 될 거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디어 환경에도 이런 구분법을 도입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언론사나 대기업이 공급하는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미디어 1.0’ 시대. 방송국 게시판이나 인터넷 뉴스 댓글란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활동하고 1차 저작물에서 파생된 2차 저작물을 생산하는 ‘미디어 2.0’ 시대. 그리고 기성 컨텐츠를 인용하고 의견을 내는 수준을 넘어 자신을 미디어 생산자라고 자각하고 기성 매체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는, 다시 말해 주류 플랫폼의 의존에서 벗어나 거대 담론과 수도권 위주로 흐르던 기성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고 지역 기반의 소소한 이슈들을 천착하는 ‘미디어 3.0’의 시대. 약간은 작위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미디어 환경의 큼직한 변화를 적절히 반영한 유의미한 구분이라 생각한다. 지금부터 언급할 내용은 미디어 3.0 시대에 미디어 활동가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 특히 퍼블릭 액세스의 폭넓은 확산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몇 가지 IT 트렌드를 통해 찾아보도록 하겠다.


2.0 우리에게 필요한 것


2.1.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고작 10년도 안됐지만 이제 UCC란 단어는 너무도 익숙한 낱말이 되었다. 장기 자랑 수준의 정보와 재미를 뽐내던 수준을 넘어 공중파 방송이 제공하는 것 이상의 유용한 정보와 새로운 재미를 주는 수많은 개인 방송국들이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 넘쳐나고, 전세계인의 젊은이들이 케이블TV보다 유튜브 영상을 더 보고 있다는 통계(주1)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미디어 소비 행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동영상을 벗어나면 그 변화는 더욱 거대하고 역동적이다. 어떤 이들의 트위터 구독자수는 수천만 명에 이르고(주2), 멋진 사진이나 자기가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올리는 잘 나가는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 주인장의 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좋아요’가 쇄도한다. 파워 블로거의 리뷰 하나하나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제조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비록 인터넷 위주의 현상이기는 해도 이 정도면 가히 격변의 시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다만 이런 변화는 아직까지는 대기업이나 첨단 기술에 종속되었고, 자본의 흐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언제나 존재하던 새로움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유행일 수 있고, 결국 유명인의 구심력을 따라 돌아가는 전통적인 권력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적어도 소수의 ‘권력 주체’만이 생산하던 컨텐츠를 일반 대중이 생산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에서는 인쇄 혁명에 못지않은 혁명이라 부를 수 있으리다. 다시 말해 기존에는 미디어에 대한 참여가 단순의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한 소극적 움직임이었다면, 미디어 3.0 시대의 참여는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수준의 참여를 포함하여 다양한 이슈에 대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증식하는 ‘미디어 생명체’로서의 활동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는 미디어 컨텐츠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일련의 과정이 뒤따른다. 

  지금부터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차세대 미디어 운동이 지녀야 할 속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2. “듣고 싶은 말들만 적당히 가려 듣길” - 미디어 큐레이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들이 특별한 기준과 관점에 따라 분류한 예술품을 전시하듯 포털 사이트들도 사용자들이 한곳에서 편리하게 모든 자료들에 접근하도록 수많은 시도를 펼쳐왔다. 그중에서 네이버가 시도했던 뉴스캐스트(주3)는 일종의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포털 사이트 미디어 담당자의 임의적인 취사선택에 의해 선정된 뉴스들이 첫 화면을 도배했는데 뉴스캐스트 도입 이후에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언론사의 뉴스만을 선별하여 보고 싶은 소식만 볼 수 있었다. 이런 시도는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일방적으로 제시되던 정보를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 골라 볼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매번 어딘가로 가지 않고 한 곳에서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포털 사이트들은 늘 자신들이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해왔다고 주장하겠지만 초기에는 사용자의 요구와는 상관없는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기에 그것을 진정한 ‘서비스’라고는 할 수 없었다(주4).

  이미 업무 이외의 분야에서 컴퓨터 사용시간을 추월한 모바일 기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큐레이션 앱이 제공되고 있다. 바로 ‘플립보드’앱이다. 플립보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론사의 뉴스를 등록하거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계정을 비롯하여 또다른 플립보드 사용자들이 선정한 기준에 의해 간택된 매거진이란 형태의 소식들이 아주 ‘예쁘게’ 제공된다. 내 입맛에 맞는 소식들을 한 번만 등록해놓으면 매일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식탁에 앉아 읽듯 간편하게 볼 수 있다. 단지 손가락만 까닥거리면 많은 정보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할 순 없을 것이다. 진정한 원스탑 서비스.


2.3.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 인터페이스

  예전 무술영화의 주인공들은 무예를 배우기 위해 쓸 데 없어 보이는 수련과정을 견뎌야만 했다.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요리를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수련 아닌 수련을 끝까지 견뎌낸 주인공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단련되었기 때문에 끝판왕과 훌륭한 승부를 벌일 수 있었다. 요즘 영화의 수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영화 <데몰리션맨>과 <매트릭스>에선 주인공의 뇌에 무술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것으로 끝난다. 혹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물체를 지니기만 해도 엄청난 무공이 습득된다. 거의 사기에 가까운 이런 변화는 신세대의 정보습득방식의 변화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선 어떤 노력과 희생이라도 기울이는 게 당연했지만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클릭 몇 번이면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회는 갈수록 빠르게 돌아가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진득하게 기다리는 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정보검색을 할 때 여러 단계를 거치면 거칠수록 사용자는 중간에 포기하고 해당 사이트나 프로그램을 벗어난다. 심지어 내용이 한 눈에 잘 읽히도록 배치하는 가독성이나 뭔가를 설치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범용성, 호환성까지 떨어진다면 이미 사용자의 손가락은 창을 닫고 있을 것이다. 예전엔 ‘내용이 핵심’이었고 얼마 전까진 ‘스타일이 내용’이라는 말이 통용되었지만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된 요즘에는 ‘인터페이스가 내용’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모든 게 단순해지고 있다. 누군가 무언가를 제공할 때는 가장 쉽고 단순한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시절이다. ‘Less is more’.

  덤으로 한 가지 기가 막힌 사례를 소개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진화를 거쳐 현재의 쇼핑은 아주 간단해졌다. 원하는 제품을 검색한 뒤 최저가 제품을 찾아서 주문한다. 끝. 그런데 이조차 생략한 서비스가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서 나왔다. 바로 ‘DASH’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한 번 구입했던 제품을 계속 산다는 속성을 파악한 아마존은 고객들에게 치약만한 크기의 단말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단말기에는 바코드 리더와 녹음버튼이 달려 있는데, 평소에 쓰던 물건이 다 떨어지면 이를 이용해 해당 제품을 주문하는 것이다. 즉 마지막으로 라면 봉지 바코드에 단말기를 갖다 대거나 녹음 버튼을 누르고 “XX 라면 몇 개”라고만 말을 하면 즉시 아마존 계정의 장바구니에 물건이 담기거나 심지어는 배송까지 이뤄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인터페이스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윤 추구를 위해 소비자들의 귀차니즘을 최대한 배려하는 기업들의 노력, 정말 가상하고도 무섭지 않은가.


2.4.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 홍익인간 정신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호환성 때문에 골치를 썩었을 것이다. 내가 보낸 파일을 상대편 컴퓨터에서 열지 못한다던가, 컴퓨터에서 잘 열리던 사이트가 휴대폰으로 접속하면 모양이 깨지던가 클릭이 안 되는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어디서나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를 호환성이라 일컫는데 요즘처럼 다양한 기기와 기술규격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호환성이 최고의 가치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앱’이란 형태로 우후죽순 등장하였다. 애플 제품을 위해서는 App store가,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을 위해서는 Play store가 다양한 앱들을 제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에서 잘 쓰던 앱이 안드로이드 플레이 스토어에선 보이지 않는다던가, 같은 안드로이드폰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제품에선 돌아가고 어떤 제품에선 안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마치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 시장을 두고 벌였던 베타 방식과 VHS 방식의 전쟁의 경우처럼 시장지배를 위해 이권 다툼을 하는 거대 고래의 싸움에 사용자들의 등만 터지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던 사용자들을 위해 만능열쇠같은 HTML5란 막강한 기술규격이 등장했고 더 이상 어떤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특정 플랫폼에 종속될 필요가 없어졌다. 안드로이드폰이든 아이폰이든 태블릿PC든 일반 컴퓨터든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뿌려졌고 더 이상 어떤 것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은 사라졌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미디어의 세계에선 호환성이란 이름으로 실현되고 있다.


2.5.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맞춤 서비스

  세계화, 국제화 시대란 말이 촌스럽게 들릴 정도로 국가와 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지극히 좁은 곳에 머물고 있다. 바다 건너 지진 소식을 몇 분만에 전해 들을 정도로 세상은 좁아졌지만 희한하게도 스마트폰의 많은 앱들은 사용자의 활동 지역에 기반한 정보 제공에 집중하고 있다.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맛집에 들렀는지, 이 사진은 어디서 찍었는지…. 심지어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에선 특정 기사를 많이 본 연령대와 지역을 명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또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광대하건만 사람들은 갈수록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자신이 팔로잉하거나 관련 있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뉴스와 정보에 만족하고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를 포기한다. 단순히 더 찾아보기가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인들의 취향이 자신과 유사할 거란 짐작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찾는 데 드는 수고를 덜려는 목적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어떤 서비스가 일괄적,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요즘에는 각 사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된다. 단순히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받는 것을 넘어 직접 해당 서비스의 각종 요소를 변경하고 조합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받기도 한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용자는 자신이 아무 거나 골랐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사용자가 긴 시간 동안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자신도 모르게 축적하고 제공했던 빅데이터에 기반한 광고나 옵션에 영향을 받은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철저히 개인에게 맞춰진 서비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내가 활동하는 지역을 분석하고 내가 클릭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쌓아두었다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 서비스는 프라이버시 문제와 보안문제에서는 엄청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편의성에서만큼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편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니, 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2.6.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 개방성과 가변성

  2014년 초에 아이패드용으로 ‘Ken burns’란 앱이 출시됐다. 기존에 만들어진 영상물을 임의로 선택하고 배치하여 나만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앱인데 일종의 영상 리믹스 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 백개의 영상들 중 내가 원하는 주제에 어울리는 클립들을 선택한 뒤 재생목록을 만들면 그 자체로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인데 같은 영상 클립을 가지고도 제작자의 수만큼 다양한 수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영상 제작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도다. 이런 제작 방식이 보편화되면 SBS모닝와이드의 ‘블랙박스로 본 세상’이나 김경만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삐 소리가 울리면>(주5)처럼 기존에 제작된 영상물을 가공하여 나만의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고 분노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데 ‘4.16 그날이후’ 프로젝트나 ‘우리동네 촛불’ 프로젝트는 집단지성을 동원한 공동제작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4.16 프로젝트는 제작자의 페이스북 계정에 관련 정보를 올리면 타임라인 형태의 웹페이지에 여러 가지 정보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촛불 프로젝트는 진보넷의 연락처에 해당 지역의 추모집회나 분향소 정보를 올리면 구글지도상에 표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상단에 있는 재생 버튼을 누르면 날짜가 지남에 따라 봉화가 펴져나가듯, 혹은 들불이 번져나가듯 촛불 아이콘이 뜨면서 정보 제공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제작방식을 매쉬업(Mash-up)이라 부르는데 이미 많은 IT 업체들은 지도나 날씨 정보 같은 서비스를 오픈 API(주6) 형태로 타사 블로그나 외부 개발자들의 앱에 제공함으로써 자사의 서비스를 누구나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으며,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수많은 퍼블릭 도메인 작품들이나 CCL(주7) 공유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의 창작물들을 활용한 2차 저작물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디제이가 여러 곡의 음악을 맘대로 뒤섞어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듯 전세계의 수많은 창작물과 데이터와 서비스를 이리저리 뒤섞으면 어떤 놀라운 작품이 나올까. 심히 기대된다.


2.7.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화를 싫어하고” - 유희성

  심각한 내용은 늘 진지하게 다뤄야 할까. 혹은 가벼운 접근은 무례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게임이다. 캐나다의 포트 맥머레이 지역의 석유 개발 사업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게임 형식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풀어낸 <포트 맥머니(Fort McMoney)>(주8)가 그 좋은 사례인데, 관객(게이머)은 사이트에 접속하여 게임처럼 진행되는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를 좇아가야 한다. 실제 맥머레이 지역 주민인 게임 속 캐릭터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고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되도록 많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보통의 다큐멘터리가 제작자의 의도대로 편집된 영상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에 반해 다큐멘터리 게임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가상의 주인공이 되어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참여자와 SNS를 통해 토론을 벌일 수도 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벽을 허무는 효과를 체험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과거에는 인터렉티브 영화라는 이름으로 잠깐 소개된 적도 있지만 결말에 이르는 ‘경우의 수’가 단조롭고 게임이 제공하는 최고 미덕인 ‘승부욕’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기에 성공을 거두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게임의 스토리텔링 기법에 익숙해져 있고, 주류 영화에도 게임의 형식이 차용될 정도로 적당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좋은 기획만 선행된다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유익한 내용도 형식이 재미있지 않으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신인류가 등장하고 있는 요즘, 기존의 뻔하고 고리타분한 방식을 고수할 것인지 재미를 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인지의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창작자의 선택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3.0. 지금, 미디어 3.0

  앞서 언급했던 속성들을 퍼블릭 액세스 운동에 접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속성들이지만 현실에 적용하는 건 또다른 문제 아닌가. 그래서 지금부터는 퍼블릭 액세스 운동을 위한 상상을 해보려고 한다. 기존의 플랫폼에 미디어 3.0 시대의 속성들을 접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뉴 미디어의 대표주자인 스마트폰앱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혼자만의 어설픈 상상이지만 여러 활동가들의 경험과 열정에 전문가들의 기술이 더해진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기대해본다.


3.1. 도입해야 할 속성들

접근성 - 한곳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원스탑 서비스, 누구나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직관적이고 간단한 인터페이스, 어떤 환경에서 접속하더라도 같은 내용물을 향유할 수 있는 호환성.

개인화 서비스 - 이용자 개개인의 취향과 요구를 충족시키는 맞춤 서비스, 이용자의 거주/활동지역 기반의 정보 제공.

개방성과 가변성 -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열려 있고, 원하는 대로 가공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되고, 공유를 할 경우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 속성.

유희성 - 같은 내용이라도 조금 더 재미있게 받아 들이게 만드는 형식적 고민과 진지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지는 여유로운 분위기.


3.2. 가상의 퍼블릭 액세스 스마트폰앱 '퍼블스'

  퍼블릭 액세스에 관심 있는 누군가가 이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특정 지역을 지날 때 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에 대한 기사나 영상이 뜨면 확인한다. 다른 누군가는 해당 이슈에 대해 예전에 찍었던 영상을 업로드한다. 직접 업로드해도 되고, 유튜브 같은 타사이트에 올린 영상 주소를 공유해도 된다.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보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활동가 목록에 접근한다. 물론 이들은 자발적으로 등록한 활동가들이다.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십시일반 힘을 합쳐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이후 실전에서 경험을 쌓은 그 사람은 또다른 새내기를 위한 멘토로 활동한다. 

  올라오는 작품들 중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를 따라 제한 공개 내지는 전체 공개를 한 작품들이 있다. 직접 현장에 찾아가기 힘들거나 혼자서 작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해당 클립들을 모아 자기만의 시각이 들어간 작품을 만든다. 진지했던 원본과는 거리가 있게 재기발랄한 스타일을 띄거나 다른 맥락에서 인용을 해서 원래 촬영자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영상물로 재탄생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퍼뜨리기 위해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유명SNS에도 업로드한다. 각 영상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잘 요약하는 태그를 달았기 때문에 불특정다수의 검색결과에도 나타날 수가 있다. 새로운 기사거리를 찾는 언론인들은 늘상 인터넷 세상을 주목하고 관심 키워드를 검색한다. 그들에게 발견된 퍼블릭 액세스 영상은 자연스럽게 기사에 영감을 주거나 소스로 활용된다.


3.3. 이게 뭐야?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이미 나와있는 개념과 서비스를 짜깁기한 수준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더욱 희망적이지 않나? 굳이 큰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누구나 기존 미디어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지니게 되는 셈이니까.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게 미디어3.0인데, 왜 당신은 주저하고 있는가.


2015년에 쓴 글입니다. 발표용 자료를 글로 옮긴 거라 빈틈이 많으니 양해바랍니다.(특히 3장)

주1) http://www.youtube.com/yt/press/ko/statistics.html

주2) http://twittercounter.com/pages/100

주3)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로 뉴스캐스트 서비스는 중단되고 뉴스스탠드 서비스로 대체되었다.

주4) 그런 점에서 네이버 뉴스캐스트도 엄밀히 말하면 큐레이션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끌어모으기인 애그리게이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보고 싶은 언론사와 기사의 주제까지 귀찮을 정도로 선택하여 한 곳에서 받아 볼 수 있는 구글 뉴스가 큐레이션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선 구글 뉴스를 쓰는 사람의 수가 너무도 적기 때문에 좋은 사례로 언급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큐레이션 인터페이스도 예쁘지 않다!

주5) 인디다큐 영화 소개 페이지. http://www.sidof.org/913

주6) http://ko.wikipedia.org/wiki/API

주7) http://ko.wikipedia.org/wiki/크리에이티브_커먼즈

주8) ACT! 87호 관련 기사. http://actmediact.tistory.com/142


매거진의 이전글 가짜 뉴스와 싸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