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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Apr 03. 2019

<바이스> 워싱턴 DC의 포레스트 검프, 딕 체니

영화 <바이스>를 본 뒤 미국 정치가 궁금해진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영화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바이스>를 보고나서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1994)가 생각났다. 미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미국인의 표상이 된 포레스트 검프처럼 딕 체니도 미국 사회의 다른 곳에서 온몸으로 역사를 겪었으니까. 아니, 단순히 겪는 걸 넘어 직접 만들었으니 표상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담 맥케이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전작 <빅 쇼트>로 미국 금융위기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가볍고 재치있는 스타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감독이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편집의 힘 덕분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장기를 볼 수 있어 기뻤다. 관객이 몰입을 하거나 특정 사안과 인물에게 집중한다 싶으면 화법을 바꾸어 흐름을 끊고, 낯선 개념을 설명할 땐 치기 어리다 싶을 정도로 산만하게 자료를 제시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도 아닌데 갑자기 배우가 관객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산만한 ADHD 편집이 동시대 감독들과는 다른 아담 맥케이 감독만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몽타쥬 편집


같은 표정 연기지만 다음 장면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쿨레쇼프 효과

  영화가 발명된 후 2,30년 간은 친절한 영화 편집이 대세였다. 필요한 그림을 시간 순서나 인과 관계에 맞춰 붙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제작자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낭비되는 장면이 없으니 경제적이고 오해의 여지가 없으니 창작자에게도 안전한 편집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일일이 설명하려니 물리적인 시간이 꽤 소요될 수밖에 없고, 보는 이들도 머리를 쓰지 않고 수동적으로 감상을 하게 되니 관객이나 제작자 모두에게 그리 발전적이진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에 몽타주 기법이란 게 등장했다. 각 장면(cut)이 자연스럽게 붙지 않고 교차되고 충돌하면서 원래 갖고 있던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로 읽히게 된 것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뒤에 어떤 장면이 오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시퀀스를 다 보고나면 각 장면 정보의 총합보다 더 큰 의미가 발생해서 1+1의 값이 3 이상인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발명이자 혁명이었다. 레프 쿨레쇼프,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D.W. 그리피스의 손을 거치며 몽타쥬 기법은 일반화 되었고, 그 덕분에 영화도 문학에 못지 않은 함의를 담을 수 있는 예술의 한 장르로 변모할 수 있었다.


  <빅 쇼트>에 이어 <바이스>에서도 많은 영상 클립들이 쏟아져 나오는 몽타주 편집이 활약한다. 혹자는 산만해서 정신 없다고 하지만 쿨레쇼프 효과나 몽타주 기법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주 이야기가 나오다가 엉뚱한 장면이 나오면 둘 중 하나로 해석하면 된다. '사실 둘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비유법으로. 유사한 의미의 그림들을 배치해서 첫 주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스포츠물에서 주인공들이 훈련하는 흔한 장면들을 떠올리면 된다. 아니면 '주인공이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다음 장면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방식으로. 많은 코미디 영화에서 사용하는 역설적 편집인데 장면의 의미들이 충돌을 일으켜서 결국 모순을 드러내는 식으로 첫 주장을 무력화시킨다.    


몽타주 감상법


  이 영화만 봐서는 <바이스>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인이라 해도 영화 속 수십 년간의 역사를 모두 알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강요하기도 어렵다. "영화 한 편 이해하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드니까.

  영화에서 다루는 굵직한 사건과 이슈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 몇 편의 목록을 정리해봤다. 일종의 몽타주 감상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말하는 관련영상, 추천영상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딕 체니란 사람을 이해하고 <바이스>란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참고 자료, 지금부터 방출한다.


딕 체니. 1941년 생. 백인 남성. 미국인. 감리교.

1960년에 예일 대학 입학 후 중퇴. 몇 년 뒤 와이오밍 대학교 졸업. 1965년 상원의원 인턴 생활 시작. 1974년부터 백악관에서 보좌관, 수석보좌관으로 근무. 1978년 와이오밍주 하원의원 당선. 5선 후 역임 후 1989년 아빠 부시 대통령의 국방부장관으로 임명. 1993년 장관 퇴임 후 유전 건설 및 군수업체 핼리버튼 CEO 취임. 2001년 아들 부시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으로 임명. 2009년 퇴임.


미국 대선 101

<킹메이커> (2011) - 선거 운동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선거 ‘전쟁’인 미국 대선 캠페인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영화. 미국의 양당제(공화당,민주당)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은 될 듯. [하우스 오브 카드]도 추천하고 싶지만 5시즌까지 있는 드라마다 보니 패스.

<링컨> (2012) - 그 유명한 링컨 대통령조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양당제 하에서 진흙탕 싸움을 했다는 걸 잘 보여준 영화. <바이스>에서는 법안 통과를 위한 싸움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가지만 미국 정치를 알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요소다. 노예 해방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 소위 진보인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원이었단 걸 알려주는 건 보너스.


1950년대 - 냉전시대

<굿나잇 앤 굿럭> (2005) - 2차 대전 직후, 냉전시대 초기 미국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는 걸 넘어 정적을 제거하는 무기로 사용됐던 매카시즘을 다룬 영화. ‘빨갱이’란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려준다.

<트럼보> (2015) - 매카시즘과 블랙리스트는 영화판과 작가에게도 피할 수 없는 광풍이었다.


1960년대 - 베트남전

<포레스트 검프> (1994) - 베트남전과 반전운동, 68혁명, 히피 같은 키워드를 짧은 시간동안 공부하려면 이 영화만한 게 없다. 포레스트 검프는 그 중심에 있었으니까.

<플래툰> (1986) - 그들은 왜 싸우는가

<지옥의 묵시록> (1979) - 미치지 않을 수 있는가

<7월 4일생> (1989) - 일단 살아 돌아오긴 했는데...


1970년대 - 워터게이트

<더 포스트> (2017) - 베트남전이 명분 없는 전쟁이란 걸 세상이 알게 해 준 언론인들의 싸움. 언론 자유와 언론 존재의 이유.

<닉슨> (1995) - 이 영화는 이거 하나면 설명이 끝난다. 워터게이트 사건.

<프로스트 vs 닉슨> (2008) - <닉슨>이 중심에 있다면 이 영화는 후일담. 하지만 <더 포스트>만큼 강렬하다.


1980년대 - 작은 정부, 팍스 아메리카나

<철의 여인> (2011) -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외부로는 강한 국가를 내세우고 안으로는 감세와 규제 철폐,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국가 대개조를 펼친 레이건 대통령. 레이거니즘과 유사한 대처리즘을 보는 것도 미국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대처가 더 궁금하다면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쭉 보면 좋지만 그게 힘들다면 일단 <빌리 앨리어트>라도 보시길.

<로보캅> (1987) - 뜬금없어 보이겠지만 도움이 된다. 치안마저 민간 기업에 맡기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단적이지만 제대로 묘사되고 있으니까.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면 그 일은 누가 맡아야 할까? 정답은 기업. 치안은 시작일 뿐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딕 체니가 근무했던 핼리버튼 같은 다국적 기업에게 국가 안보와 전쟁까지 넘겨준다.

<로저와 나> (1989) - 정부는 작아질수록 좋고 기업은 자유로울수록 좋다는 80년대가 종말을 맞이한다. <블레이드 러너>와 <다이하드>에도 반영되었던 일본의 경제 공세가 워낙 거세다 보니까.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있게 한 러스트 벨트를 알고 싶다면 필감.


1990년대 - 올 댓 석유

<시리아나> (2005) 걸프전은 결국 석유전쟁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정보기관)와 기업이 손잡으면 어떻게 될까.

<쓰리 킹즈> (1999) 나라가 전쟁으로 한탕 하는데 병사라고 못 하라는 법이 있나.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 (2005) - 걸프전 간접 체험.


2000년대 - 쌍둥이 빌딩

<플라이트 93> (2006) - 9/11 테러 당시를 긴박하게 보여준다.

<화씨 911> (2004) - 9/11 테러의 뒤에서 이득을 얻은 자들을, 사정 없이 ‘까밝힌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 당시 초등학교 방문 중에 눈만 꿈뻑였다는 사실은 보너스로 알려주고.

<랜드 오브 플렌티> (2004) - 테러 후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기 시작한 미국의 단면

<그린존> (2010) - 처음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더니 이젠 이라크야? 이라크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나선 미군 병사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베트남전에서도 겪었던 일.

<제로 다크 써티> (2012) -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

<아르마딜로> (2010) - 대테러전에 참여한 젊은 병사들. 전장이 게임과 겹치는 순간,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또 전쟁은?

<아이 인 더 스카이> (2015) - <바이스>에선 잠깐 나왔던 드론 폭격 영상을 더 길게 확인하고 싶다면.

<관타나모로 가는 길> (2006) - 법이 있으면 뭐하나. 법의 헛점을 이용한 권력기관의 만행은 멈추지 않는데. 법잘알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테러 ‘관타나모 수용소’


2010년대 - 감시사회

<스노든> (2016) 결국 안전이 인권을 이긴 미국을 보여준다.

<시티즌포> (2014) <스노든>의 원작 다큐멘터리격.


아쉬움 

 <바이스>를 좋아하고 강력히 추천하지만 <빅쇼트>보다는 덜 좋아하는 건 관객이 인물이 아닌 체제나 사회구조로 관심을 돌릴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악당 하나를 세우고 조롱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인물이 대표하는 견해나 가치들은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그런 인물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시하게 된다. 모든 영화가 구조적 모순을 다룰 필요는 없고 다룰 수도 없겠지만,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특정 인물이 부각되는 방식으로만 다룬다면 잘해봐야 마녀사냥이 될 뿐이다. 딕 체니란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전기영화 형식의 한계겠지만, 전작의 균형감이 워낙 훌륭해서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어찌 됐든 아담 맥케이 감독의 다음 영화는 기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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