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주키 Mar 27. 2021

아날로그 여행법

2014 Amsterdam, Netherlands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이 있었다. 스피커의 검은 천을 뚫고 스믈스믈하는 소리와 함께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술기운이 적당히 올라온 탓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흔들었다. 그 틈을 타 탈출을 계획하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자유를 찾아 돌고래처럼 비상하고 말았다.


 핸드폰의 어딘가로 날아올랐다는 사실은 날이 밝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젯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와 찌릿거리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채로 이불을 뒤적거려보지만, 핸드폰의 행방은 묘연하다. 탕자처럼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후회하고 있을 내 핸드폰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핸드폰을 집어 들어 “예쁜 아들”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실제론 예쁘지 않은 아들인데…’ 속죄하는 마음으로 일정한 간격의 수화음을 멍하니 듣는다.


  꽤 긴 시간 동안 수화음이 반복적으로 울리고 침을 꿀꺽 삼키고 나니,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네 음절 말의 파장이 부드럽게 내 볼을 간지럽혔다. 내 또래 여자의 목소리였다.

 “저기... 핸드폰 주인인데요. 혹시 어디 계신가요?”

 “홍대 쪽에 있는데 두시쯤 경의선 출구 쪽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전화를 끊고 어젯밤 헨젤과 그레텔이 그랬듯 친절하게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와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이르다. 해장 커피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경의선 주변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테라스에 엉덩이를 붙였다. 여전히 저릿한 머리와 오후의 햇볕 때문에 저항하듯 미간을 구겨 하늘을 노려보았다.

 핸드폰은 다시 어머니께 돌려드린 터라 하릴없이 오후 두 시라는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른한 상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자니, 스물한 살 나의 첫 배낭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훨씬 전이어서, 폴더 형태의 2G 폰을 들고 다닐 때였다. 외국에 나간다고 로밍할 필요도 없었다. 로밍은 그저 출장 중인 직장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여행자의 입장에서 핸드폰 진동은 그저 방해꾼과 같았기 때문에 캐리어 옷더미 안에 핸드폰을 단단히 파묻어 놓았다. 물론 음악 듣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독하디 독한 아날로그 주의자ㅡMP3는 음악, 카메라는 사진, 핸드폰은 오로지 연락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하나의 기기가 하나의 용도로만 활용되길 원했다.ㅡ를 표방했기 때문에 지도와 펜을 꺼내 내비게이션의 안내 대신 친절한 인상을 가진 현지인들을 찾아 직접 말을 건네며 여행을 이어가곤 했다.


 이렇게 스마트하지 않은 방식으로(스마트폰이 없이) 편리함과 최신 기술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려는 모습의 여행법을 ‘아날로그 여행법’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아날로그 여행법은 스마트한 여행보다는 불편하고 때론 위험하지만, 정보의 부재로부터 발생한 절묘한 우연의 연속은 여행을 조금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경험한 아날로그 여행은 사람 만나는 방식부터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은 SNS에서 유명한 카페나 쇼핑거리만 가도 쉽게 동행을 구할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 여행은 그렇지 않다.

 일단 거리로 나가기만 하면 인터넷이 끊겨 동행자와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숙소 안에서 미리 연락을 주고받아 시간과 장소 그리고 약간의 힌트를 공유한다.(서로의 신상을 만나기도 전이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그 힌트만 가지고 낯선 거리에서 서로를 찾아다녀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 제약된 정보를 가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첫 동행자는 이런 힌트를 주었다. 

 “정오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요. 저는 빨간 옷을 입고 있을 거예요.”

 이 말만 믿고 새 학기 짝꿍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정오의 시계탑을 찾아 나선다. 시계탑을 발견하면, 곧이어 힌트로 주어진 빨간 옷을 찾는다. 

 그런데 아뿔싸. 빨간 옷이 하나, 둘, 몇 명이지? 빨간 옷이 유행인지,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시계탑 앞의 빨갛게 물든 용의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하고 암구호를 외쳐보지만, 당황하거나 의아한 표정이 되돌아온다. 결국 오지 않는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저- 멀리서 트로트를 좋아하거나 해병대를 나왔을 것 같은 빨간색의 아저씨가 뚜벅뚜벅 뜨거운 태양을 뚫고 걸어온다. 내심 짝꿍 기다리는 것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동행자를 찾아다닌 게 웃겨서 웃음이 새어 나왔으나 강렬한 붉은색을 지닌 이 아저씨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일상에서도 한정된 공간이라고 하지만, 색감에만 의존하여 누군가를 찾아다닌 적이 있을까? ‘기다린다’라는 평범한 행위에 아날로그적 접근이 가미되니 꽤나 낭만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비록 붉은 아저씨가 다가왔지만.


 그런데, 최근에 갔던 여행에서 최소한의 낭만은 찾아볼 수도 없는 눈살 찌푸려지는 방식으로 동행을 구하는 사람을 보았다.(물론 개개인의 여행은 늘 위대하고 저마다의 방식은 너무나도 존중한다.)

 에펠탑 앞에서 우연히 한국 무리를 만나 와인을 나누어 마셨는데, 그중 한 남성분이 자랑하듯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는 오늘 말이죠. 이 여자랑 루브르 박물관에서 손 잡고 다녔어요. 내일은 이 여자를 만나는데, 내일 만나는 동행하는 사람 얼굴이 더 마음에 들어요.”


 동행이라는 말을 데이트로 착각하는 건지, 동행은 그저 같은 길을 따라 걷고 그 공간만의 햇살의 밀도, 바람이 가미된 풀의 내음, 나뭇잎의 초록색을 나누어 공유하고 소소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흑심으로 가득 찬 동행이 서로의 여행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상하게 불쾌해져서, 와인을 원샷으로 때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나를 따라다니는 건지 내가 가는 곳마다 그 남자가 정말로 새로운 여자들과 손을 잡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흑심 없이 시계탑 앞에서 만난 붉은 옷의 아저씨는 사실 트로트 가수도, 해병대 출신도 아닌 미국에서 교수를 하던 재미교포였는데, 건축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이래저래 설명도 해주셨고, 배낭 여행자로서는 맛보기 힘든 비싼 와인까지 대접해주셨다.

 그 며칠간의 동행 덕분에 작년까지도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늘 인생의 고민들을 천천히 들어주고, 조언을 아낌없이 퍼 주신덕에 선한 영향을 많이도 받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군인이었을 때 한국으로 여행을 오시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럽에서의 보답을 따로 하지 못했다.


 아저씨와의 낭만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정말 많다.

 비록 스마트하지 못해 정보가 부족한 덕분에 불편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지만, 아날로그 여행은 풍부한 경험과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해준다.ㅡ너덜너덜해진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현지인과 머리를 맞대거나, 길을 찾다가 식사를 함께 하거나 기차를 놓치고 차를 얻어 타는 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경험담이다.ㅡ


 몇 년이나 더 된 일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다 보니, 어느덧 오후 두 시가 됐다. 빨간 옷을 입고 오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서 내 핸드폰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 또래 여자가 보였다. 시계탑 앞에서 처럼 여러 사람 찾아갈 필요 없이 그 여성분에게 다가가 감사의 인사와 사례비를 건네었다.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사례비예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사례비는 부담스럽고, 지금 점심시간이니까 점심 한 끼 사주세요!”


 첫 유럽여행의 향수 때문에 잘못 들었나, 아니면 빨간 옷의 교수님의 손녀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빨간 옷을 입고 당당히 걸어오던 아저씨의 웃는 모습이 생각나서 또다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전 05화 실력 없는 버스커만이 살아남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