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
달과 해가 비슷한 높이에 있던 초저녁, 핸드폰이 탁자와 부딪혀 일정한 간격의 소리를 냈다. 진한 흑갈색 나무로 만든 바Bar 자리여서 그런지 진동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약속 장소에 빨리 도착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촌 ‘코블러’였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곤 낮은 조도의 빛과 나무로 된 실내 인테리어뿐이었지만, 어딘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 자리. 어딘가 낯이 익어 핸드폰을 들어 검색해보니, 영화 <소공녀> 속 여자 주인공이 맛있게 담배를 태우며 위스키를 마시던 바로 그 자리였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검색 결과는 아니었다. 분명 내가 가봤던 장소 중에 비슷한 곳이 있었는데, 첫사랑의 얼굴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버번위스키로 만든 어느 도시 이름의 칵테일을 목구멍으로 털어 넘길 때 시야에 들어온 천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정답을 열심히 떠올리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잘 지내? 너네 동네 핫플레이스 됐더라?”
‘음… 우리 동네? 근데 누구세요?’하고 물어보려는 찰나에 핸드폰 너머 상대방이 참을성 없이 말을 이어갔다.
“라떼는 말야… 우리 여행할 때는 여행정보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 링크 들어가 봐! 오빠가 살던 그 동네 엄청 핫플됐대!”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순간 의심했던 낯선 상대는 어떤 게시물의 링크도 보내왔다. <체코 브르노Brno,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브르노 세 글자를 보자마자 두 가지 궁금증ㅡ여기(코블러)와 비슷한 느낌의 장소가 어딘지, 낯선 대화 상대가 누군지ㅡ이 확실히 풀리게 되었다.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은 체코 브르노에서 살고 있을 때 만난 Y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떠올리고 있던 기억 속 장소는 그녀를 처음 만난 브르노 구석에 있는 작은 바였다.
사실 브르노는 프라하Praha나 체스키크롬로프Cesky Krumlov처럼 친숙한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체코를 두 지역으로 나눌 때 서쪽은 보헤미아Bohemia, 동쪽은 모라비아Moravia로 나눌 수 있는데, 서쪽을 대표하는 도시가 프라하라면 동쪽의 경우는 브르노이다. 그만큼 체코에서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에 얽힌 이야기와 체코 특유의 후추향 강한 인상과 더불어 대학가 주변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느낌의 카페나 바들이 즐비해있었다. 개인적으로 베를린의 시크하고 모던한 모습과 프라하의 동화 속 소녀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내가 ‘체코의 혜화동’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주기까지 한 거 보면, 브르노라는 도시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에 틀림없었다.
실제로 체코에서 대학이 가장 많이 몰려 있어서 그런지, 관광객들을 상대하기보단 맛과 실력, 디자인으로 젊은 층의 이목을 집중하려는 가게들이 많았다. 그러한 마케팅의 일환일지 몰라도 대부분의 가게들이 간판이 없어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힘들게 찾은 카페나 바는 나만 아는 장소로 느껴져, 여행자인 나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기까지 했다.
그날도 체코 현지 친구와 1차로는 맥주를 마시고ㅡ테이블별로 몇 리터의 맥주를 마시는지 전광판에 기록되는 술집에서 전투를 펼쳤다. 1등은 안주가 공짜다.ㅡ 2차로 간판 없는 이름 모를 위스키 바로 향했다.
한두 잔쯤 비웠을까, 구석에서 춤추는 무리가 보였다. 바닥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기괴한 삐그덕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친구가 잔을 비우는 사이 삐그덕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소리를 내는 무리 중에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여자 아이가 검은색에 빨간 땡땡이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땡땡이 때문인지 멀미가 일었다
잠깐 바깥공기를 쐬고 오니, 춤추는 무리가 사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만 사용해서,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붉은 땡땡이 무늬를 발견했다.
취했어도 말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전에도 한국인을 닮아 말을 걸었으나, 몽골 국적의 친구였고 취한 상태에서 영어를 계속 쓰는 건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듯 크게 외쳤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한국인이면 반응이 있을 거고, 아니면 아닌 거였다.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니면 말고” 한마디를 더 하고 술잔을 향해 등을 돌리려는데 빨간 땡땡이가 일어서서 점점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한국인을 다 만나네요, 저는 북한 사람입네다.”
여기서 북한 사람을 만나다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는데, 장난이었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쌍문동에 사는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Y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Y는 브르노에서 멀지 않은 소도시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다. 그 도시에는 한인마트가 있어서(브르노에는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는 빌미로 Y에게 한인 한국 음식 재료 배달을 시켰다.
그녀가 올 때마다, 배달비 대신 맛있는 점심과 함께 브르노 가이드 투어를 해주었다.
“여기는 브르노의 낙산 공원, 슈필베르크Špilberk* 성곽이야. 한눈에 이 도시를 볼 수 있어. 종종 모터사이클 경기도 열린다!”
“여기는 브르노의 광화문, 양배추 시장Cabbage Market*. 주말에 친구들이랑 나와서 맥주를 마시곤 해.”
“여긴,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빌라투겐하트Villa Tugendhat*이야. 나도 나중에 성공해서 이렇게 집 지으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이드였지만, 당시 브르노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 Y에게도 대안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실 이런 관광지보다는 예쁜 카페나 음식점을 더 기대했다. 체코에서 유독 브르노에 더 감각적인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건 또 나의 전문분야였고, 그녀와 나는 서로 원하는 것을 얻으며 윈-윈Win-Win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 요리를 마음껏 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곳저곳 애칭을 붙여둔 브르노에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좋은 기억 때문에 체코 여행을 가는 친구들에게 항상 브르노를 추천하곤 하는데, 지금까지도 브르노로 여행 간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힙스터의 성지’라니. 그 게시물 말고도 포털 사이트에 브르노에 대한 게시글이 꽤 많이 보여서, 이상하게 뿌듯했다. 나만 알던 가수가 어느덧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열창하는 걸 발견한 기분이랄까.
브르노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연락 온 Y도 잘됐다고 했다. 그 당시 말했던 장래희망과 소름 끼치게 똑같이, 모 대기업의 해외지사 주재원으로 둥근 지구 위에서 멋지게 꿈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거쳐간 것들은 다 잘됐다. 그게 헤어진 이성친구나 이제는 멀어진 친구라 하더라도.
어떤 대상과 헤어진 후에도 미운 정 때문인지, 그 대상들에 대한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종종 기도도 한다. (딱히 집착은 아니다.)
어쨌든 브르노나 Y처럼 잘되는 건 너무 좋은데, 거쳐가지 말고 그냥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 없는 밤은 너무 쓸쓸해~’
슈필베르크Špilberk 성*: 13세기부터 성에서, 군사용 요새, 나치의 수용소 현재는 박물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보리 색 성벽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피아노를 치는 사람과 공원, 브르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등장한다.
양배추 시장Cabbage Market*: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마켓이 열리고, 평소에도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여름에는 젤라또 트럭, 겨울에는 핫와인을 들고 다니는 걸 추천한다.
빌라투겐하트Villa Tugendhat*: 미스 반 더 로에Mies van der Rohe가 투겐하트 부부를 위해 지어준 빌라로 대리석과 원색 통유리를 사용한 건축물이다.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고, 세계 4대 빌라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뷰도 좋고, 가는 걸 추천한다.
(예약은 적어도 2주 전에 하는 걸 추천한다. http://www.tugendhat.eu)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가수 이소라의 노래 제목이자 노래 첫마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