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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주키 Mar 27. 2021

Sold out 되기 전에, 고민고민하지 마 Boy

2014 Kutna Hora, Czech

 올해도 어김없이 깊숙한 곳에서 잠들고 있던 카톡방 알람이 울렸다. 졸업한 지금까지도 후배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Y선배의 연락이다. 

 "이번에도 할인쿠폰 들어왔는데 살 사람은 말해, 같이 주문할게!"

 "와- 형 고마워요." 

 "오빠 최고!"

 "선배, 저는 이거 부탁드릴게요"


 구매대행과 해외 직구 전문가로 소문난 Y는 대학시절 엄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면접에서 별명이 뭐냐고 물어보면 엄마 혹은 Mom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주변 사람을 잘 챙겼다. Y는 나에게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전공 과제를 하지 않으면, 왜 하지 않았느냐고 잔소리를 하고는 선뜻 자신의 것을 꺼내어 보여주었고, 술자리에서는 먼저 취한다 해도 후배들을 먼저 챙겨주던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졸업을 하고 나서는 환절기 때마다 해외 유명 브랜드 옷을 저렴한 가격에 대신 구매해주고 있다.(이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고 있어서, 나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제 여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Y에게 연락이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다리던 연락이 오니 그에게 옷을 사달라고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번 달에는 여름휴가도 다녀왔고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는 시즌이어서 지출이 꽤나 컸기 때문이었다.

 

 출근 후, 업무 메일을 모두 읽음 상태로 만드는 동안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사진첩에 캡쳐해두었다.

 그 리스트 안에는 예전부터 사려고 했던 독일군 야상도 있어서 반드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곤, Y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카카오톡 앱의 노란색 버튼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러나 Y와의 단톡방을 찾기도 전에 그 버튼이 마치 음식점 벨이라도 됐던 것처럼 우리의 주방장, 부장님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전 내 열띤 회의가 진행된 회의실은 눈치도 없이, 점심시간이 무려 2분이나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을 하나하나 뱉어냈다.


 정신없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식당을 향해가다가, Y에게 연락하려던 게 생각이 났다.

 '아 맞다. 내 옷!’

 아까 찾던 스크롤을 마저 내려 Y가 속해있는 방을 성급히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형! 저 이거 사고 싶은데, 혹시 제 것도 추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Y가 아닌 후배 M이 답을 한다.

 "오빠, 아까 말했어야지! 어이구, 못 말려! 이미 한도 끝났어!"

 "하나도 안된다고?"

 "그래, 오빠 돈 굳었네! 다음부터는 빨리하자! 기회 있을 때 그냥 감사합니다~ 하는 거야. 알겠지?"

 이렇게 놀리는 M을 찾아가서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었지만, 문득 몇 년 전 M에게 느낀 고마움이 머리 안을 휘집고 나가서 참기로 했다.


 M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후배였다. 나는 체코, 그녀는 터키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는 없었지만, 시차가 맞는 친구가 드물었기 때문에 메신저로 꽤나 많은 수다를 떨어댔다.

 그 수다 속 그녀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는 당시 나의 생활과 멘탈에 큰 도움이 됐다.


 교환학생을 시작할 때, 고민이 하나 있었다. 수강신청 문제였는데, 학생답게 수업을 빡세게 들을 것인지. 아니면 격주로 수업을 들으며 여행을 많이 다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한국에서조차 딱히 수업을 빡세게 듣지는 않았을뿐더러, 유럽에서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싶어서 떠난 교환학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다. 수강신청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혼란 속에 빠트리곤 하는데, 그게 유럽까지 따라왔나 싶었다. 여러 조합으로 강의 리스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반복하면서 생각했다.

 ‘마우스 클릭 하나가 유럽 일정의 모든 것을. 아니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지도 몰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고민으로 하루 반나절을 보내다가 지칠 때쯤, M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녀와 수다를 한번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기 때문에 답장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녀에게 고민을 꺼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수많은 수다로 인해 나를 잘 알고 있던 M은 내가 원하는 정답을 얘기해주었다. 답정너라는 말과 함께.

 "오빠! 고민하지 말고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하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거야"


 그녀는 유럽에 오기 전에 나눈 대화 속에서 정답을 찾았다고 했다.

 “오빠가 말했잖아. 대학생 때 학구적인 모드가 아니라 이런저런 경험하려고 학생 한다며!”


 예전에 내가 “대학을 다니는 목적이 공부에만 있지 않고,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게 목표다.”라고 했던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시험을 잘 못 보거나 낮은 학점이 까발려지고 나면 했던 변명 같은 말이었는데도 말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아, 맞다.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경험주의자. 고마워!”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치는 소리와 함께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하곤, 잔치국수 마시듯 후루룩 수강신청을 끝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수강신청을 완료하고, 어김없이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에는 그 당시 만나던 J와 데이트를 했는데, 뜬금없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보통이었다면 조금은 고민했겠지만, 어제 수강신청을 쿨하게(?) 끝낸 나는 거침이 없었다. 

 “무조건 Yes지. 기차역으로 가자!”

 

 그렇게 유럽에서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는 J의 프라하와 나의 브루노 사이의 소도시 쿠트나호라Kutna Hora였다. 소도시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싸한 정보를 찾기도 어려워서 그냥 기차역에서 제일 그럴싸한 이름의 도시를 고른다는 것이 쿠트나호라였다.


 쿠트나호라에 도착하자마자 뾰족한 고딕 양식의 첨탑이 아름다운 성당 지붕을 만났다. 구름 무리가 첨탑을 허들처럼 넘어 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었고, 나는 지붕에 반사된 정오의 햇살에 눈을 작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베이지색 성당과 절묘하게 이어진 잔디밭에서는 야외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빨간색 머리칼을 가진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머리색과 비슷한 붉은 꽃으로 만들어진 부케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리고 있었다.

 네모 반듯한 잔디밭의 테두리를 따라 난간이 있었는데, 어떤 커플은 난간에 걸터앉아 키스를 하고 있었다. J와 나는 커플의 사랑에 방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반대편 난간에 기대어 난간 아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난간 밑을 내려다보니 매끈한 돌로 만들어진 길도 성당 지붕과 비슷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길 위로 어린아이들이 동굴 탐방을 위해, 병아리 같은 노란 안전모를 쓰고 줄을 서고 있었는데 그 노란색 플라스틱마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소도시, 쿠트나호라는 빛이 나는 도시인가 보다.’

2014 Barbara's cathedral, Czech

 밝은 사람에게도 어딘가 어두운 부분이 존재하듯, 밝게만 생각한 이 동네에도 아픈 역사가 있었다. 

 쿠트나호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해골로 만든 성당이었는데, 흑사병으로 죽은 3만 구의 시신을 묻을 곳이 없어서 장식으로 만들어낸 성당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성당의 입구에는 이 성당이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도시의 첫인상 때문인지 그 말이 쓰여있는 해골로 만든 게시판조차 아름다워 보였다. 해골로 장식한 성당이라 음침한 느낌을 줄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산뜻한 느낌을 주는 성당의 묘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성당 내부를 다 구경하고 옆문을 통해 빠져나오자, 작은 화원이 있는 공원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곳에서 광합성을 하며, 잠시 쉬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꽃을 구경하려고 저 멀리 화원을 바라보니, 조금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화원이 아니라 묘지였다. 

 쏟아붓는 햇살을 튕겨내는 대리석 묘비와 화사한 꽃은 내 눈을 찡그리게 했고,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벤치에 앉아서인지, 화원으로 보였던 것이다.(사진 속의 묘지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묘비에는 생활 체코어만 나는  알아볼 수 없는 체코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인생이 담긴 멋들어진 한 줄이 기록되어있겠지.’하고 생각했다.


 그 묘비와 정체모를 문자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M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고민하다가 혹시라도 이 여행을 놓쳤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쿠트나호라는 평생 오지 못했겠지.


 "고민하지 말고 원래 목적대로, 그래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거야"


 매일같이 고민만 하다가 '매진', 'Sold out'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내 묘비에 적히지 않을까?


 수강신청과 첫 여행, 그리고 이후 일정에도 영향을 준 M의 한마디가 고마웠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분명 필요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일을 하게 될지, 아닐지에 대한 정답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느낌이 온다면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주저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쿠트나호라 여행을 하며 했던 생각인데, 몇 년이 지난 지금 M에게 또 이런 조언을 듣다니. 사람은 참 변하질 않나 보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그녀의 인생 한마디를 잊고, 또다시 고민의 상자 속에 갇혀 지내온 것 같다.


 다음 환절기에 다시 Y선배의 구매대행 연락이 오면, M보다 빨리 구매리스트를 보내 놓곤 말해봐야겠다.

 "야, 우물쭈물하면 다친다. 고민고민하지 마 Girl~"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 풍자와 위트의 극작가로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원문을 번역하면, "오래 버티면, 이런 일(죽음)도 생길 줄 내가 알았지!" 정도인데, 2006년 이동통신회사 '쇼(Show)'가 신상품 홍보를 위해 발음이 비슷한 '조지 버나드 쇼(Shaw)'의 묘비명을 의도적으로 오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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