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주키 Mar 27. 2021

사월의 비를 좋아하시나요?

2014 Amsterdam, Netherlands

 누군가는 사월의 비가 잔인하다고 말했지만 사월의 비를 좋아한다.
 커피를 내릴 때 원두를 흠뻑 적셔 진한 향기를 만들어내는 90도 정도의 물처럼, 사월의 비는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속 깊숙이 스며들어 잠자던 흙의 냄새를 코 끝까지 올려 보내준다. 나는 그 향을 좋아하는데 콧속을 괴롭히던 미세먼지까지 해치워주니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월의 비를 좋아하는 건 단지 향 때문만은 아니다. 겨울에는 없던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이 좋다.
 아침 출근길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어깨를 맞대고 부딪히며 때로는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면 꽤나 불쾌하다. 공공장소에서 서로가 허락하지 않은 스킨십이라니. 물론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사월의 비가 내리면 우산 주변으로 접근하지 않는 일종의 결계가 생겨난다. 이 ‘사적인 공간’은 겨울에는 존재하지 않고, 여름에도 있긴 있으나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는 모종의 희생이 필요하기에 유독 사월의 비를 반가워한다.

 사실 이렇게 사월의 비와 사적인 공간을 연결 짓는 것은 수더분하지 못한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몸 주위로 나만이 알고 있는 휴전선 같은 게 존재해서 누군가가 함부로 그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마음속의 비상벨이 울린다. 버스에서 누군가 뒤로 의자를 젖혀 눈 앞에 정수리 냄새를 가져올 때, 카페에서 넓은 테이블을 놔두고 굳이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앉을 때. 그 비상벨이 작동한다. 아마도 반 갈라 땋은 머리처럼 책상 위를 화이트로 선을 그어 “넘어오면 안 된다!”라는 말을 내뱉곤, 내심 내 손이 넘어오는 것을 기대했던 초등학교 시절 귀여운 짝꿍에게서 이 벨을 선물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월쯤 봄 비가 와서 우산을 챙길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사적인 공간’에 대한 애정 어린 집착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사람이다.
 잠시 체코에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만난 독일 출신의 친구인데, 아담한 키에 얼핏 엠마 왓슨을 닮았고 늘 자신감이 넘쳐흐르던 친구로 기억한다. 함께 있으면 주변 사람도 덩달아 밝게 만들어주는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친구였다. 사실 좋아하는 외국 여배우 순위에 엠마 왓슨의 이름은 없으나,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친구였다.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얘기 나눌 기회가 많진 않았을뿐더러, 맘에 드는 외국인 이성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알고리즘이 내 머릿속에는 없어서 이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욕심이 없으면 기회가 생긴다고 했던가? 재밌어 보이는 이름의 한 교양수업에서 그녀와 나는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수업의 외국인 학생은 그 친구와 나뿐이었고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업은 트램으로 약 40분 거리에 있던 분교에서 열리는 수업이었고, 그런 이유로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첫날 트램에서 우연히 만나 “너 어디가?”, “같이 가자!”라고 얘기를 나눈 후, 우리는 매주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마치면 때마침 점심 먹을 시간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네 맛집을 탐방해야만 했고, 어떤 날은 돌아가는 길에 함께 미술관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다. 
 국적은 달랐지만 입맛과 취향이 서로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호감이 콩알만 하게 생겨났다. 그리고 누구나 경험해봤겠지만, 이 콩알의 성장 속도는 동화 ‘잭과 콩나무’의 그 씨앗처럼 너무도 빨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썸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썸을 타는 데 있어서 각자가 생각하는 ‘사적인 공간’에 대한 범위가 달랐다. 대화할 때면 그녀는 늘 내가 설치해 둔 마지막 방어선까지 허물고 들어오곤 했다. 허벅다리에 손을 올리고, 얼굴과 얼굴 사이에 주먹 하나의 공간만 남겨 놓은 채.
 문화적 혹은 성향의 차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거니까 금방 적응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으나 좀처럼 적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선물 받은 비상벨은 고장나거나 배터리를 갈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잘 안됐다.

 이토록 아무리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장 ‘사적인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프리패스로 당연하게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옹졸한 성격을 고백하는 것 같아 부끄러운 점도 있으나, 지금까지도 비상벨의 저주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적인 공간’에 대한 집착은 조금씩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적인 공간’의 의미는 상대에 대한 배려, 나에 대한 존중 혹은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공간에 대한 집착은 쉽사리 버릴 수 없다는 직감이 든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호감이 있어도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슬프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독일 친구와 만난 이후로 늘상 이에 대해 고민을 해왔고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사적인 공간’에 대한 집착은 유지하면서도 관계를 짙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꽤나 간단하다. 

 그저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내 ‘사적인 공간’으로 초대할 수 있도록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과 내 공간에 대해 함께 사유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일 또한 즐거울 것이다.


 정답을 알고 있기에 언젠가 사월의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누군가 내 우산 속으로 쏙- 들어와도 빗물의 차가움보다는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전 01화 두 남녀가 건너면 사랑에 빠지는 다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