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카메라 들고 올 걸…’
목에 건 카메라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무식하게 생긴 렌즈가 부착된 카메라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여행 마지막 날까지 누적된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숙소 골목 끝 코너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고장 난 로봇처럼 멍하니 거리를 보고 있었다. 사실 거리의 풍경을 본 건 아니었다. 하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초점을 흐릿하게 하고 하늘색 빛깔을 관찰하고 있었다.
날이라도 흐렸으면 버스 오는 시간까지 앉아있다가 갔을 텐데, 이런 날씨에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오늘 이 도시, 암스테르담과 작별한다고 생각하니 오랜 연인과 헤어질 때처럼 세심한 부분까지 들여다보지 못한 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지막이니까. 조금 더 세심히 돌아봐줄게 스테르담아!’
흑설탕이 녹아 끈적끈적해진 커피 추출물의 남은 한 모금을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방적으로 암스테르담에게 통보한 것이었으나, 약속은 약속이니 도시의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했다. 건물의 좁은 폭에 꽉 끼여있는 통유리 창문 덕에 건물 내부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의 창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술관에 붙어있는 각기 다른 색채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 같이 흥미로웠다.
‘골목 하나하나도 이렇게나 감각적인걸! 그냥 갔으면 아쉬울 뻔했어.’
어느덧 피로는 잊은 채 목에 걸린 커다란 카메라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검지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은 뒤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180도로 몸을 빠르게 회전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골목을 나오니,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 답게 수많은 다리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게 눈에 보이는 넓은 광장이 나왔다. 이어서 그 다리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한 여자를 발견했다.
분홍색 나시에 러닝 바지,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 있는 여자였다. 아마도 러닝을 하다가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어 그 순간을 흠뻑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특별하다고 느껴졌던 건,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였다면 사진기부터 꺼냈을 것 같은데, 다리 위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분홍빛 하늘과 물결, 오밀조밀 모여있는 세모 모양 지붕을 가진 귀여운 건물들)을 보지도 않고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내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후 두 시 오십 분쯤의 시곗바늘처럼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천천히 움직이는 어깨선만 봐도 그녀의 기분을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리의 난간과 평행한 그녀의 어깨선은 난간 위로 여전히 반듯한 선을 만들며, 높이 치솟았다가 다시 제자리를 향해 되돌아갔는데, 아마도 깊고 느긋한 숨을 내쉬며 몸의 주파수를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특정 주파수 대역에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순간은 늘 사진으로 저장하려고 하는 내가 보기에는 색다르고 멋있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서 또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정말 사진의 노예인 것인가.) 이왕 카메라를 꺼내 들었으면, 잘 좀 찍지. 여유로운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는 성급한 셔터 덕에 초점 하나 맞지 않는 흔들린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건, 나중에 사진을 보고 사진 속 행복한 감정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 당시의 기분과 주변의 소음, 심지어는 냄새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행위로 인해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몇 초간은 렌즈와 필터에 의해 그 순간을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감수해야만 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 속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등장해서 공감한 적이 있다. 주인공 월터 미티는 라이프매거진(LIFE)*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다가 일련의 사건을 겪게 되며, 전설의 사진작가인 쇼넬 오코너를 찾아 나선다. 그를 찾으려는 혼신의 노력 끝에 히말라야 중턱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쇼넬 오코너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설산 속의 ‘유령 표범’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막상 ‘유령 표범’이 등장하자 카메라 렌즈에서 눈을 떼고 쳐다보기만 했다. 월터가 그에게 왜 사진을 찍지 않냐고 질문하자, 이런 명대사를 날린다.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이 순간에 머물려고 하지. 바로 그곳에, 지금 여기에
If I like a moment, I mean,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n of the Camera.
So I stay in it. Right there. Right here.
다리 위 그녀를 보고서 쇼넬 오코너의 명대사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도 순간에 머물며,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정도는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좋아하는 책의 결말 부분만 읽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날의 밤에 꺼내어 읽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그 책은 좋았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마법의 책이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사진을 찍는 것처럼 직관적이지는 않다.
조금 더 직관적인 두 번째 방법은 영화 <그녀, Her>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몸의 형체가 없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행복한 순간을 공유하지만, 둘이 함께 사진을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인 그녀가 사진 대신 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행복한 순간에 위치한 두 사람, 이를테면 분수에 의해 부서지는 햇살, 달달한 감정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 음악을 작곡한다.
사실 이 방법은 인공지능에게만 부여된 능력이 아니다. 구매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된 능력이다. 아직까지도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만 들으면, 유년시절 휴가 길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아직도 'Knocking on heaven's door'만 들으면, 답답한 도로를 탈출해 바다가 보이는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
음악은 단순히 여행지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 누군가가 좋아해서 추천해줬다거나, 싸이월드의 배경음악 혹은 컬러링으로 설정한 노래가 특정 인물을 소환했던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어쩌면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음악을 통한 기록 방법은 양쪽 귀에 이어폰만 꼽고 돌아다니면 가능해서 편리하기까지 하다. 사진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방법도 너무나 훌륭한 방법이지만, 종종 무거운 카메라의 무게와, 렌즈의 방해 없이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알려준 이 낭만적인 기록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유독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면, 그대로 머물러 보자! 바로 그 순간에.
라이프매거진(LIFE)* : 71년의 역사를 끝으로 지금은 사라진 사진 잡지, 전쟁, 달착륙 등 전 세계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 공유했고, 백범김구, 윈스턴 처칠, 마돈나 등 위인과 유명인도 대거 등장한다. 폐간 후 현재는 웹사이트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