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사회심리학의 창시자인 허버트 스펜서는 지성이 아닌 감정이 의견을 좌우한다고 했고,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는 사람을 대할 때 편견과 허영으로 마음이 어지러운, 감정의 동물을 대하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보면서, 감정은 이성과 분리될 수 있는 개인적이고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로 보았고, 우리 스스로도 논리가 세운 계획이 감정에 지는 경험,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기대한 타인이 납득하기 힘든 감정적 반응을 내보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며, 인간이 항상 이성적일 것이라는 믿음은 경험적으로 조율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모여 이루는 사회에서 감정은 중요한 주제이지요. 하지만, 감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노력은 그 중요성에 비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초반부는 사회에 통념적으로 널리 퍼진 감정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저자는 감정의 본질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실체임을 풍부한 근거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설명합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주장하는 감정 이론은 비전문가가 봐도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주장입니다. 혹은 이미 이에 맞춰 심리학계가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만큼 최신 뇌과학 이론과 연구들을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서술되었지만,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서술되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현대 학문의 성과를 누구나 소화할 수 있도록 풀어낸 책을 만나는 것은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고, 불의를 폭로하는 뉴스를 보면 분노에 차오릅니다. 이때 '슬픔'과 '분노 유발'이라는 건, 그 영화 혹은 뉴스에 이미 내포된 속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슬플 것이고, 누구나 이런 뉴스에는 화를 낼 것 아닌가요? 그러나 저자는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듭니다. 과연 슬픔과 분노가 무엇인가요? 눈물이 나는 게 슬픔이라면 묵념은 슬픔이 아니란 이야기가 되고, 모든 분노가 얼굴이 붉어지고 소리를 지르는 형태로 표출되진 않습니다.
저자는 감정을 규정짓는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생물학적 지표들을 활용하여 감정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특정 감정, 슬픔이나 기쁨, 분노 등을 표현하는 표식은 없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추가적인 연구는 우리가 문화적 맥락 없이 감정을 인식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슬픈 사람을 보면 당연히 그가 슬픔을 느끼는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맥락 없이 단순 사진만으로 이를 집어낼 가능성은 1/3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감정의 실체는, 감정 역시 사회적인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벌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때는, 각각의 말벌은 동일 개체가 아닙니다. 또한 이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 역시 다양한 방식(사진, 영상, 모형 등)으로 제시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사례를 모아 우리는 머릿속에서 말벌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만들고, 새로운 말벌 개체를 봤을 때 부리나케 도망가기라는 적절한 반응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감정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뇌는 사회에서 슬픔을 구성하는 각 사례, 분노를 구성하는 각 사례를 수집합니다. 이런 각각의 사례들이 모여서 슬픔과 분노라는 반응을 보이기에 적절한 상황들의 모임이라는 추상적 형태로, 뇌에 개념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껏 수집한 슬픔과 분노에 대한 사례들을 활용하여, 감정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서술은 오해를 불러오기 쉬운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허구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 감정의 존재는 우리 안에 '분노 버튼' 이 있어서 외부 자극이 분노를 누르는 식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문화 안에서 사람들 간에 감정 개념의 공유가 일어나며 감정이 실제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사회적 실재'라고 합니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이 경제를 움직이는 것 역시 사회적 실제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읽기 쉽게 씌었지만, 전문성이 있는 책이다 보니 필요한 개념들을 책에서 직접 제시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내용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가 내용을 잘 따라오도록 배려하면서 읽는 사람의 세계관을 변화시켜놓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직접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감정 개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느끼며 살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상황과 그 사람의 반응을 보고, 그 사람이 느낄 감정을 추측할 뿐이죠. 저 사람의 저런 행동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말입니다. 이런 식의 감정 읽기는 사람 사이에 언어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며, 서로가 서로의 공감능력에 의지하고 소속감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만일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둘 간의 관계는 배타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심하면 상대방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경험에 의해 구성된 문화라는 사실을 알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나와 다른 감정 사례를 수집하여, 같은 상황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정이 인간에 본질적으로 탑재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면 서로 다른 감정 반응은 너와 내가 근본이 다른 사람이라는 신호가 되지만, 공감 역시도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함으로써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소통의 영역입니다.
또한 감정은, (반복해서 말하지만) 사회적으로 학습되며 여러 사례를 하나의 추상적 범주의 개념으로 묶는 뇌의 활동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세밀한 추상적 개념은 외부와 내부 자극을 더 적절한 범주로 분류하고, 이로부터 적절한 반응을 끌어내는 과정을 한층 더 최적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밀한 추상적 개념을 갖는다는 것을 책에선 높은 감정 입자도를 갖는다고 하는데, 결국 '많은 감정 관련 개념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소 신기한 결론이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감정 관련 어휘를 익히는 일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감정이란 것이 객관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사고, 우리의 신체적 느낌 등이 우리의 감정을 구성한다는 관점은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납득이 잘 되지도 않습니다. 이 책 역시 이 낯선 개념을 거부감 없이 소개하는 데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근거로 뒷받침 되는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관점에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겪는 사람들 보고 '눈이 뒤집혔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을 들으면 이성이 마비된 상태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이 떠오르죠. '분노가 폭발했다' 역시 내면에 숨은 통제불능의 감정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온 이미지이죠. 이런 표현들은 당사자가 본능에 탑재된 감정 시스템에 휘말린 뉘앙스를 줍니다. 하지만, 구성된 감정 이론에 따르면 이런 감정 표출은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사례를 수집하여, 머릿속에 심어 둔 감정 개념에서 인출한 반응입니다.
굳이 눈이 뒤집히는 분노와 같은 예시가 아니어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이는 크고 작은 감정적 반응은 모두 스스로가 구성한 감정 개념에 의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감정의 주인이고,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경험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도출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모두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물론 사회 문화적 환경, 어릴 때의 경험은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있지만, 적어도 개인의 감정에 대한 책임은 많은 부분이 본인에게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이성으로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섬세한 감정 개념들을 사용하여 적절한 환경에 적절한 반응을 하고, 외부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운동과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내부 자극 때문에 불필요한 부정적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순 있습니다. 또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면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타인의 입장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봐도 과학 서적의 결론 같지는 않아 보이네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엿본 최신 뇌과학의 연구 결과는, 인격 수양에 관한 오래된 지혜들을 지지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