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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esta Apr 14. 2021

어떤 삶을 살아내든,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 에밀 아자르






    이 소설의 배경인 벨빌은, 외국인과 빈민층이 모여있는 파리의 낙후된 교외 지역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교양과 생활수준을 가진 우리가 소설의 주인공들과 길에서 만났다면, 아마 우리는 눈살을 찌푸렸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이 가난하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기준에서 볼 때, 그들의 생활 방식은 사회의 윤리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춘, 절도 등은 일상생활에 불과한 곳에서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은 삶을 꾸려 나갑니다. 그러나 애시당초 법의 보호를 받을 공간이 아니기에, 법의 테두리를 넘는 것이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파리 시내 한복판의 문명 속에서 이런 일들을 저질렀다면, 이 책은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불공정한 사회 속 반항아들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 벨빌 거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입니다. 책의 초점은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에 훨씬 가깝게 맞춰져 있습니다.『자기 앞의 생』은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외모와 정체성,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에서 주인공들을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날 기회가 어쩌다 생긴다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적 시선과 통념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살아가며 깨닫게 되는 내용들입니다. 자신이 받는 시선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이제 막 열 살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시선을 생각하기엔 너무 어리고, 그저 자기가 맞닥뜨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헤처 나가느라 바쁜 나이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색안경 없이 주인공 모모 앞에 놓인 생을 그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안락한 가정과 달리, 삶은 어린이에게 세상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고통은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제길


    다시 우리의 시선으로 소설 속 인물들을 바라봅시다. 로자 아주머니는 젊었을 때 창녀로 일하다, 나이 먹어서는 창녀의 불법적인 자식들을 맡아 키워주는 일을 하는 늙고 살찐 노인입니다. 삶의 모든 단계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삶을 유지해나가는 게 버거웠을 것입니다. 은다 아메데는 고향에 성공했다는 허풍을 일삼는 흑인 포주이고, 롤라 아주머니는 이민 온 성전환자로, 이 사람도 화대를 업으로 삼습니다. 그녀가 '일하는' 볼로뉴 숲에서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반길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린 모모의 눈에 롤라 아주머니는 특별하고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로자 아주머니에게선 성녀로까지 불리기도 하죠. 은다 씨는 모모의 눈에 남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비칩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부모님 대신 모모를 사랑해 주고 또 모모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불우한 처지에 비해 그들의 삶에 큰 절망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식을 걷어내고, 상대의 조건에 상관없이 인정을 주고받는 온기가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지위, 재력, 외관 등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는 요인들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는 이런 꼬리표가 떨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던 관심 역시 재빠르게 거두어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모는 노망이 난 하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주고, 병세로 고통받는 로자 아주머니의 옆을 끝까지 지킵니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다른 꼬리표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일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의 인연들에게 조건 없이 최선을 다하고, 그들과 유대감을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어떤 생이 주어지든, 삶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모모는 항상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어려 본 적이 없다' 고 말합니다. 어리다는 것의 특권은 행동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한 잘못은 보통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으로 보듬어지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과제인 모모의 경우 그런 응석은 사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 생을 그런대로 잘 살아 내는 아이이지만, 아이를 보듬어주는 사랑의 부재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은 열 살짜리 아이가 의연히 견뎌내기 힘든 감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모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광대 친구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강한 암사자를 새로 사귑니다. 물론 현실이 아니죠. 생의 어두운 면을 자주 마주하며 자란 모모는, 사랑과 외로움을 현실에서 채울 수 없어 상상력을 발휘하는 어쩔 수 없는 아이일 뿐입니다. 현실은 결국 모모에게 벗어나고 싶은 공간입니다. 배를 타고 떠나고 싶어 하고, 영화 필름을 돌리듯 시간을 거꾸로 돌려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죠.


    감정이 많이 섞여들지 않은 문체 때문에 느끼기 힘들지만, 모모는 힘든 생 속에서, 사랑에 목말라하며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사랑과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존재가 바로 로자 아주머니이죠. 그래서 로자 아주머니와의 작별을 모모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모모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담담하게 맞서는 데 나이에 비해 이골이 난 아이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는, 나를 사랑해 준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보단 화장품으로 그린 아주머니와 같이 있는 걸 택한, 잔인하고 가슴 아픈 장면으로 채워집니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소설 초반부에 어린 모모가 지혜로운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입니다. 아마 모모는 그 대답을 스스로의 삶에서 깨우쳤을 것입니다. 모모에게 사랑을 주는 로자 아주머니가 위독한 것을 보고, 은다 씨는 대형물건 수거 전화번호를 주고 떠납니다. 대형 물건, 사회에서 로자 아주머니의 위치를 잔인하게 느끼게 하는 단어이죠. 또한 모모가 사랑을 주는 대상은 잡동사니로 묶은 낡은 우산, 아르튀르입니다. '사랑할 가치'이외엔 아무런 설득력 있는 가치를 지니지 못한 존재이죠. 사랑은 어떤 대상이,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서로 사랑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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