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7월 24일의 이야기들

13년 전 내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그녀를 위한 기도

by 김명재

하루의 시작, 뜻밖의 마주침.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 으레 그렇듯 페이스북 창부터 띄운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과거의 오늘’이 불쑥 튀어나온다.

늘 그렇듯, 페이스북은 잊은 줄 알았던 나의 시간을 슬쩍 들춰낸다.

마치 잊으면 안 된다는 듯이, 괜스레 등을 떠민다.

오늘은 몇 개 장면과 그녀 기억이 나를 찾아왔다.


7년 전.

매번 다니던 길이 지루하게 느껴져, 나는 새로운 길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더 멀고 더 힘든 길이었지만, 낯선 길을 간다는 긴장감이 몸의 감각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11년 전, 서울시청 광장 앞.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했던 그날의 마음도 있었다.

2008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부터 연이어 터졌던 말도 안 되는 사건들 속에서

세월호 참사만은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기억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해.
아이와 함께한 자전거 전국 일주를 준비하며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구리 집까지 달렸던 첫 여정의 기록도

되살아났다.

전국 자전거 일주를 꿈꾸며,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구리 집까지 달렸던 첫 여정.

그 길의 시작점에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덩치는 작아도 페달을 밟는 힘은 야무졌다.

헬멧을 벗으면 땀에 젖어 이리저리 헝클어졌던 머리칼, 반이나 얼룩졌던 등짝까지도 생생했다.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던 아이가 사진속에 웃고 있다.


그리고 13년 전, 로마.

베드로 성당의 빛내림을 보며 셔터를 눌렀던 순간.

그 사진엔 단출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로마 베드로 성당! 웅장하다!”

짧은 감탄 뒤에 남은 여운은 짧은 문장으로 오래 남았다.

그녀의 댓글.
베드로 성당 사진 아래, 그녀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후조리원에 머물고 있으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내가 올리는 유럽의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교회 사진을 통해 그녀는 결혼식 날 울렸던 내 목소리를 떠올린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된 그녀를 축하했고, 몇 장의 사진을 올릴 테니, 그 안에 작은 기쁨이 오래도록 머물길 바랐다.

지워지지 않는 사람.
그 이후로, 그녀가 예전부터 앓아온 병으로 힘겨워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다.

어느 날은 유방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아쉽게도 어린아이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졌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내 페이스북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었고,

더는 이 세상에 없는 그녀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

내 마음 저편 어딘가에서 오래된 바람 소리처럼, 아득하고 아련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축가를 불렀던 날.
그녀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사람은 나였다.

딱히 가까웠다고 하긴 어려운 사이였는데,

그녀는 내게 축가를 부탁하며 미안하다는 듯, 또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식이 끝나고, 그녀는 신혼여행길 비행기 안에서 내게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는 인사였다.

친구가 녹음해 준 축가를 이어폰으로 다시 듣고 있다며, 들으니 또 감동이라고 했다.

그녀를 위한 기도.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어린아이를 남기고 먼저 떠난 엄마.

내가 자기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길 바랐던, 그 사람.

우연히 SNS에서 그녀의 오래된 흔적을 마주했다.

그곳에선 평안하길. 남겨진 아이는 씩씩하게 잘 자라길.

조용히, 그렇게 기도했다.

로마 베트로 교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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