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5일 (금)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아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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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계의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영화 오징어 게임이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으로 몸살을 앓는다.
내가 어렸을 때 일상으로 놀았던 게임이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는 놀이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출연자들의 연기력이다. 각 캐릭터마다 생명을 불어넣어 실제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듯 한 느낌을 가졌기에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근래 오페라를 잘 볼 수 없었다. 주중엔 일상을 당진에서 지내며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는 일상에 오페라를 보자 치면 일요일에 서울 예술의 전당을 찾아야 하는데 당진서 남양주 집까지 토요일 밤에 3시간 걸려 운전하고 돌아온 후 다음날 오전에 예배를 참석하고 오후 3시에 하는 오페라를 보러 가기엔 체력으로나 정신으로나 무리다.
그래도 근무하는 당진문화재단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국립오페라단이 전국에서 진행하는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8년간 밥벌이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경우다.
그래서 많이 기다렸고 기대가 컸었다. 당진문화재단에 근무하기 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는 자주 보러 갔었다. 내가 공연하지 않았던 오페라나, 뛰어난 성악가 출연하는 오페라는 당시 내 경제상황에서는 무리가 될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보러 다녔었다.
그런데 당진에서 진행한 카발레리아 루스트카나는 많은 아쉬움과 한 숨을 남긴다.
내 아쉬움과 한숨의 원인은
첫째,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별로였다.
언젠가 이제준 지휘자가 오페라를 지휘를 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지금 자기가 연주하는 장면이 무대에서 어떤 장면인지 알고 연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케스트라는 그저 악보를 연주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이 현재의 장면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음악과 극이 각자 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휘자의 책임이 크다. 오페라는 그저 연주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극의 상황이 서로 잘 융합되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지휘자에게 있다.
둘째, 성악가들의 실력이 별로였다.
오페라 성악가들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그 성악가가 오페라 아리아를 잘 부르고 자기가 맡은 배역의 연기를 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텐데, 오늘 출연한 출연진은 알피오 이규봉과 루치아 정유진은 노래는 잘하나 캐릭터 분석이 떨어져 연기가 따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산투차 이정아는 여주인공으로 노래는 어는 정도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온전히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써는 영 빵점이었다. 전혀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극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투리투 유현욱은 내 아까운 시간을 죽인 범인이다. 노래는 발성의 문제를 갖고 있어 오페라가 진행되는 내내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아슬아슬한 생각을 갖게 했다. 연기력 또한 떨어져서 자신이 하는 있는 투리투는 어떤 사람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노래하고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유현욱을 정말 다시 오페라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셋째, 합창단 또한 마찬가지인데, 합창 소리의 발란스가 완전히 무너졌었다. 여성 파트의 소리가 남성에 비해 작았다. 남성합창의 소리는 어느 정도 발성이 정리가 되어서 들렸는데 여성의 소리는 아직 발성이 완성되지 않아서 거의 중고등학생들이 노래하는 수준으로 발성을 하며 노래했었다. 그리고 합창단의 연기 또한 그저 무대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할이 뭔지 아무른 이해 없이 그저 연출자가 그어준 동선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주인공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합창단이 대충 별생각 없이 연기를 하고 합창을 하게 되면 관객은 오페라에 집중하기 힘들게 된다.
넷째, 연출가의 의도는 무얼까?
왜 무대를 오페라가 이야기하는 19세기 그 시대로 잡았을까? 그저 이 이야기가 그때의 이야기이니 그 시대로 설정을 하고 무대도 그렇게 만들었다? 일단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시대를 이야기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겐 이 시대 설정은 정말 이상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은 이의주 연출자에게 있다. 국립오페라단 최연소 연출자에 300회 이상 국립오페라단에서 연출을 하였다는데 이 정도로 고민 없이 연출을 한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시대는 오페라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 시대에 맞추고 무대는 그 시대 무대에 맞추고 주인공이나 합창단은 그저 왔다 갔다 하고 뭐 고민한 흔적이 있는가? 총체적으로 이렇게 오페라가 진행되는 것의 책임은 연출자가 져야 한다.
이제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구촌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현지에서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K-문화라고 다들 흡족해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오페라는 멀었다 싶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중문화 관련 위원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정청래 의원의 국회 질의 문을 읽고 이 분 오버한다 싶은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클래식 음악계는 고개를 들 수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수준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에서 아직 너무 낮은 수준의 오페라를 공연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이 정도의 공연을 전국에 뿌리고 다니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돈 들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막공연을 하고 있어요! 하고 광고하며 다니는 꼴이다. 아니면 서울 공연과 지방 공연의 차이인가? 아무튼 국립오페라단이라는 이름과 그간 내가 보아왔던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수준과는 너무나 차이 나는 공연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국립오페라단 단장 자리 때문에 시끄러웠었는데 이번 정권에는 오페라단 단장이 2명이나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경험했었다. 오페라단의 수장이 정말 관심을 갖고 오페라에 온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수준의 오페라를 전국으로 돌리며 자진해서 우스운 꼴을 당하는 바보 같은 짖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