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혼자 두고 일상으로
돌아온 저녁에

by 김명재

2박 3일 아버지께 다녀왔다.
창원 누나에게 차를 받아 오기 위한 마산행 이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2박 3일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 추석 때 봤던 아버지의 일상은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기상을 하신 후 잠시 시장을 둘러보시고 오시고선 아침을 드시고 소파에 앉으셔서 신문이나 TV를 보시다가
그대로 잠시 주무신다, 그러다 점심을 드시자고 깨우면 점심을 드시고 서실에 학생들을 맞으러 내려가셨다가 학생들이 돌아가는 5시쯤 집으로 돌아오셔서 다시 TV를 보신다. 그후 저녁을 드시고 잠시 TV를 보시다가 잠자리에 드신다.

어렸을 때 영민하셔서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으셔서 동네의 자랑이셨었다.

하지만 집안의 뒷받침이 없어 더 공부를 이어가지 못하시고 가출을 하셨다가 일찍 군대를 가셨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렇게 나이를 속이고 군입대가 가능했다고 한다.
제대를 하시고 고향에 돌아와 구장(이장)을 어린 나이에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하시다 어머니와 결혼을 하시고 자녀를 나으시고 딸 셋을 둘 때까지 고향에서 사시다가
마산으로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오셔서 한국철강이란 곳에 노동자로 입사하셔서 사무직 과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

젊은 날 아버지는 여러 가지 취미도 많으셨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하더라도 볼링, 등산, 서예 등등 많은 활동을 하셨다. 그중 서예에 집중하셔서 많은 연습을 하셨다. 퇴임 후에는 그 덕분으로 서실을 여시고 서예 선생님이 되셨다. 그 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으시고 서울을 일주일에 한 번 씩 올라다니시며 고려대학교 서예반을 졸업하시어 학위를 받으셨다.

그렇게 열정으로 사셨던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인생의 말년을 무료히 보내신다.

아버지의 등은 더 굽어지고 있으며, 귀는 더 깜깜해져 가고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내 사정도 사정이라 어찌 아버지를 도울까?
자신의 삶을 자녀를 위해 주셨는데 자녀들은 아버지를 위해 시간 내는 것은 거의 연중행사다.

추석 연휴에 일부러 하루 연차를 써서 누나들보다 하루 늦게 복귀를 했다.
운전을 하며 나서는 내 모습을 큰길 건너서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차마 바로 보지 못하고 못 본 척하였다.
오늘도 차가 떠날 때까지 서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차를 보고 계시는 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하루하루 약해지시는 아버지를 어찌 보살펴야 할까?
자주 갈 수도 없는 상황에 마음만 아프다.

올라오는 길에 반대편에서 마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보았는데 순간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했다.

어렸을 땐 무심하기만 했던 아버지이시라 나랑 많이 멀다고 여겼는데 내가 나이 들어서인가?
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이제 마산에 가면 아버지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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