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사람들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공간을 잃는다. 혹은 물리적으로 잃은 공간 덕에 마음의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내 주변엔 예술가가 많다. 예술을 주욱 같이 해온 동기, 선후배들 말고도 성공한 경영가들이 아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느 예술인이나 예술 관련 전문가보다도 더 아트 시장의 활발한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는가 하면, 과학자로서 여유로운 경제생활을 하는 어떤 이는 그림이 좋아 살짝 엿보려다 나와 같이 예술이론을 공부한 동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동기인 그에게 지금도 <박사님>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삶에 완전히 다른 분야인 <예술>을 들여놓음으로써 시간과 에너지 공간을 내주면서도 그들의 마음 공간이 채워지는 모습을 본다.
어느 날 미대 동기들 몇몇과 선배 기자에게 자신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일반인보다 더 글을 많이 읽고 써야 하는 기자는 읽어야 하는 글의 방대한 양이 압박으로 둔갑해 겁이 났던 걸까. 그는 취재와 인터뷰 또는 경제와 예술 관련한 강연을 찾아다니며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리플릿과 설명서를 모은다. 그 값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함인지 난독증 때문에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야 해서인지. 한 번은 실수로 내 가방에 넣어둔 낱장으로 된 광고지도 약속을 다시 해서 만나 건네준 적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책과 전단지로 점점 가득 차고 있다는 그는 아마도 마음속으론 안도하며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책이 넘쳐나는 건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데 <위반> 행위인 거 같아 죄책감이 들 때는 모바일이나 타블릿을 이용한다. 전자책으로 내 책장의 공간을 비워내어도 점점 읽을거리도, 읽고 싶은 이야기는 넘친다. 넷플렉스 드라마 시리즈도 나를 잠재우지 않는다. 읽기와 보기로 내 시간을 내어주고 있지만 마음의 공간은 채워진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은 점점 비워져야 안도하고 내 마음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 계속 채워져야 안도한다. 20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