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늘이 Jun 13. 2019

나는 매일 요리한다

내 가족과 상처 받은 나에게 소소하고 맛있는 신선함을 선물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요리를 한다. 5년 전 율율이 어린이집을 입학한 날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하기 전부터 시작한  경제지 기자일은 당시 피폐했던 내 생활의 최절정을 기록했다. 나는 재익과 기저귀를 늦게 떼고 만 4세가 되도록 한국말이 트이지 않은 율율을 등지고 1년 365일 새벽 4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온 가족이 다 모인 추석에도 구정날 현진씨가 차려주신 밥 상 앞에서도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방에 처박혀서 특집 기사를 올렸다. 마감의 압박과 우려와 불쾌함이 섞인 가족들의 눈초리 사이에서 머리 꼭대기가 뜨거워졌다. 


기자는 24시간 연중무휴 기사를 쓰는 직업이다. 새벽마다 잠이 덜 깬 채 노트북을 삼키듯 노려보며 타닥타닥 소리는 내고 있는 나를 보고 새벽 수업 준비를 하고 출근하는 재익이 <너 좀비 같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휙 뒤돌아 출근한다. 사랑을 넘치게 줘야 함은 물론이고 한참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율도 몇 번이나 나에게 등지는 태도를 보였다. 순간 <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 좋아하는 일 해보겠다고 하는 게 도대체가 행복한 게 아니잖아?!>를 생각하며 <뭣이 중헌디>에 관한 시비를 가려봤다. 그리고 나는 마침 스타트업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다. 나름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았지만, 젊고 열정이 앞선 그 무리는 앞으로 많은 투자를 받을 것에 대한 희망을 품은 가난하고도 비겁한 집단이었다. 외국의 저명한 경제계 인사와 인터뷰를 하는 ㅡ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내한했을 때 달려가 인터뷰를 했던ㅡ 자랑스러운 나의 첫 기자 선배는 <스타트업이 원래 그런 식이다. 재밌게 일하는 거 같아서 아무 말 안 했지~> 라며 거친 부산 사투리를 툭 뱉는다. 하아... 뭐 뒤통수를 크게 한 번 쎄리 맞은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꼭 기억할 거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나보다 약한 상대를 밟고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내 요리 사진을 올리면서 비겁함을 경험한 사례 되새김질이 그닥 유쾌하진 않지만,  남편에게 <좀비> 같다는 말까지 들어가며 열심히 했으나 그 바닥의 민낯을 맛본 후 세상과 잠시 단절을 했다. 내 아이폰은 한동안 <비행기 모드>였고 원래 통화를 자주 할 만큼 활달한 성격이 못 되는 나는 가족들과 통화도 한 달에 한두 번이 다였다. 그리고 잠시 영국에서 채식주의자인 재익의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건강한 식단과 여유로움을 보면서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도 거창하진 않지만 소소하고 맛있는 신선함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매일 요리를 한다.  <얼음 공주> ㅡ재익은 무뚝뚝함이 곧 잘 상대방을 어색하기 짝이 없게 만들어 재익 친구들의 와이프들이 붙여준 별명이다ㅡ 재익은 고맙게도 나의 요리에 매번 열 번 스무 번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 감동을 받은 날은 그다음 날 아침에도 <굿 모닝> 인사를 한 직후 전날 저녁 요리가 정말 훌륭했다고 또 칭찬을 해준다. 오늘은 부추를 아끼지 않고 넣은 돼지 목살+마늘+굴 소스 볶음 파스타를 담아냈고, 재익은 또 격하게 대 여섯 번쯤 칭찬을 퍼준다. 아직은 어떤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 율율은 <엄마 파스타 맛이가 달라>라며 평소처럼 거의 2시간 만에 겨우 먹었지만 말이다.  #밥먹다가꼭화장실가는아이 2017.9.

작가의 이전글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