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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늘이 Jun 03. 2019

“기적 같은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

미니멀 라이프 | 감사한 내 라이프

무사히 아주 친절한 사람들에 온통 둘러싸여 이사를 마쳤다. 부동산 사장님> 이사 업체> 이웃> 예쁜 욕조와 미니멀한 대형 옷걸이를 일부러 남겨두고 이사 가신 분들>복잡한 짐을 전부 치워가며 청소까지 해주신 도배 아저씨 순으로. 와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는 날도 있구나. 감사하고 다행이고 고마운 내 라이프. ㅡ스스로와 내 라이프를 소리 내서 칭찬하기를 실천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기적 같은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는 말을 하거나 쓰면 정말 감사할 일이 생김을 경험 중이기 때문이다.ㅡ


이사 직후 정리는 적당히 하고 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주말에 여유를 부렸다. 율율은 기저귀를 차고 만 1세부터 지금까지 함께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반나절 넘게 ㅡ옷을 두 차례나 갈아입고 타월로 몸을 감싸기도 하면서ㅡ물총 싸움 놀이를 했다. 열명도 넘는 이 아이들의 에너지 레벨은 게임 속 캐릭터들처럼 시간이 갈수록 업그레이드가 되어 갔다.  결국 잘 시간이 훨씬 지나 집으로 와 목욕을 한 율은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욕조에서 나오더니 자신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중 어떤 날이 더 빠른지를 나에게 물어본다. 종일 혼자의 시간을 보내서인지 평온한 얼굴로 땀 흘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재익에게 다가간 율은 그가 하는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면서, 크리스마스보다 조금 먼저 올 자신의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위시 리스트까지 상의한다. 회사원으로 치면 같이 맞담배를 피우거나 자리를 뜰 수 없는 사우나에서 유대를 나눈다는 그 스킬이 아닌가. 


오늘은 여기저기 흩어졌던 내 책들을 책장에 꽂는 기쁨을 맞았다. 심지어 장르별로.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동안은 책상, 부엌, 화장대, 2층 계단, 침대 머리맡 등에 최대한 위로 쌓아 올리는 기교를 부리며 살았는데 말이다.  책장의 센터는 해리포터 전집과 신비한 동물사전을. 철학, 문학, 소설, 에세이, 전기, 미니멀 장르를 그 주변 칸에 채웠다. 


옷과 신발 정리는… 이사 전과 후를 합치면 이사 업체용 대형 분리수거 봉투로 10개를 꽉 채워 기부하거나 너무 심하게 상한 옷은 버리고 나머지를 진열했다. 그러고도 도배 아저씨에게 <혹시 패션 쪽 일 하시나 봐요?>란 말을 들었다… 후, 더 <정리 해고> 아니 <정리 이별>을 해야겠다. 며칠 전 디즈니사에 다니는 아티스트 <레이철>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짐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버리기는 생활화된 남편 <재익>에게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는 표현을 써서 한참 웃었다가 이내 입꼬리가 내려오며 반성했다. <미니멀 라이프>로 가는 길은 황홀하게 좋으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2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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