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아침저녁 약 잘 드시고 오세요.”
“먹는 약은 안 먹고 바르는 약만 받으면 안 될까요?”
“왜요?”
“피부과 약은 독하잖아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요즘에도 가끔 이렇게 말씀하시는 환자분들이 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어쩌다 피부과 약이 독하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일까?
사실 나도 그 시대를 살지를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1970-80년대에 쓰던 케토코나졸이라는 항진균제가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케토코나졸은 간독성이 매우 심하여 지금은 연고제나 샴푸 제형처럼 전신 흡수가 거의 안 되는 형태로 사용이 되지만, 70-80년대에는 케토코나졸을 경구제로 사용했었다. 그 결과 환자들의 간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었고, 그로 인해 피부과 약이 독하다는 인식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여파일까. 발톱 무좀으로 무좀약을 드셔야 된다고 하면 간 부작용 때문에 먹기를 꺼려하는 분들은 아직까지도 많다. 물론 발톱 무좀약이 간에 영향을 약간 미쳐서 간수치가 아주 살짝 올라가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까지 무좀약으로 간이 크게 손상된 경우는 본 적이 없고, 주기적으로 간수치를 체크해가면서 약을 복용하면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간혹 졸린 것을 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약이 졸려서 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피부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알러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사용하는 항히스타민제라는 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기 때문에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 크게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하는데, 중추신경계의 작용이 강해서 많이 졸린 약이 1세대, 중추신경계 작용을 많이 줄여서 덜 졸리도록 만든 약이 2세대이다. 그래서 피부과 의사들은 부작용을 줄이고자 대부분 2세대를 조합하여 많이 사용하지만, 밤에 가려워서 잘 못 자는 환자들이나 졸려도 상관없다고 하시는 분들, 또는 증상이 2세대로 조절이 잘 안 되는 분들에게는 1세대도 사용한다. 물론 졸린 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2세대에도 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1세대를 먹어도 끄떡없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스테로이드도 독하다는 누명에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테로이드는 신이 주신 명약이다. 피부과에는 아직까지 스테로이드를 대체할 약이 없다. 모든 알러지와 염증에 효과적이고 빠르게 작용한다.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내성이 생기는 일도 없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다. 너무 과량으로 오랫동안 복용하면 얼굴이 붓거나 살이 찌기도 하고, 아주 드물지만 고관절이 괴사가 되는 경우나 부신피질이 위축되어 여러 가지 호르몬이 분비가 안 되는 심각한 부작용도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처방해준 의사와 잘 상의하여 용량을 조절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테로이드 연고도 같은 부위에 한 달 이상 과량을 바르게 되면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늘어나며, 저색소가 유발되거나 튼살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스테로이드를 화장품에 넣어서 판매한 것 때문에 스테로이드 과량 사용으로 부작용이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위 사례들 말고도 피부과 약이 독하다고 느낀 다른 이유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은 피부과가 아닌 다른 과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며, 피부과 약은 복용을 거부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으로 피부과 약이 무서워서 거부할 때는 어떤 점이 무서운지 분명하게 의사에게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의사들 대부분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그 무서운 부분이 왜 괜찮은지 친절하게 잘 설명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