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시절 피부와 관련된 일반서적들을 종종 읽었었는데, 정확하게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일본인이 물 세안에 관해 쓴 내용이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아마도 우츠기 류이치의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 였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저자는 물 세안을 한 달만 하면 피부가 살아나면서 더 이상 비누로 세안하지 않고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깨끗한 피부 상태가 유지된다고 하였다. 중간에 명현현상처럼 피부가 악화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을 잘 견디고 나면 피부가 되살아나면서 오히려 건강해진다고 주장하였다.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로 그렇게 될까?
그날부터 한 달 동안 매일 아침저녁 물로만 세안하고 화장품을 끊었다.
비누나 폼클렌저도 쓰지 않고, 평상시 바르던 에센스나 로션, 크림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모낭염이 폭발하였다. 1주도 되지 않아 하나 두 개씩 나오던 모낭 염증이 2주 만에 얼굴 전반에 다 나타났다. 그래도 지속했다.
결국 4주를 다 채웠지만, 저자가 말하는 명현현상이나 피부가 건강해지는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열심히 다시 폼클렌저로 세안하고 화장품을 바르면서 점차 모낭염은 가라앉았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서 물로만 세안한 후기나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푸 후기를 읽어봤지만 과연 그 후기가 진실일까 싶다. 물론 그 후기를 쓴 사람은 진짜로 그런 경험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일반 대중이 경험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고, 절대로,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리가 폼클렌저와 샴푸를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지에 있다.
피지는 우리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기름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산화가 되면서 특유의 냄새가 나고 염증을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아침이나 저녁 중 한 번만 세안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모낭염이 발생하게 된다.
"그건 지성피부나 그렇지, 건성피부는 괜찮지 않나요? 저는 피부가 너무 건조하던데요."
지성은 피부에 기름이 많은 것이고, 건성은 피부에 기름이 적은 것이다. 그런데 피부가 건조하면 건성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분이 많고 적은 것과 수분이 많고 적은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고, 피부가 지성이어도 수분은 부족하여 건조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매우 많다.
아무튼 통칭 건성피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그리고 수분이 쉽게 증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션이나 크림 등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이때 포함된 유분이 피지처럼 산화되어 결국 염증을 유발하게 되기 때문에 폼클렌저로 세안해서 산화된 기름을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기름으로 덧발라 주어야 한다.
안 바르고 물로만 세안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때부터는 지옥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물로만 세안해도 피부는 손상을 받는다. 물기를 닦기 위해 수건을 데는 순간, 수건을 안 써도 물기를 증발시켜서 말리는 순간, 피부는 수분을 빼앗기게 된다. 건조해진 피부는 각질층이 망가지면서 외부 자극에 취약해지면서 몹시 예민해진다. 건조하고 당기고 가렵고 따갑고 붉어지고. 이런 자극이 지속되면 혈관 확장이 유지되어 홍조가 발생한다. 홍조는 피부 진피층의 혈관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일러를 틀면 바닥이 건조해지는 것처럼 늘어난 혈관으로 혈류량이 증가하게 되어 피부를 더 건조하고 만성적이 되면 얇게 만든다. 더 건조하고 얇아진 피부는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건성피부라면서 화장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환자들이 종종 오는데 멀리서 봐도 피부가 붉고 매우 푸석푸석해 보인다.
우리 피부에 화장품은 독이고, 우리 피부는 원래 화장품이 없어도 정화작용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절대로 그러한 정화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안아키와 다를 바가 없다. 안아키를 믿어서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정화작용을 믿어서 우리의 피부를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화장품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강도의 세안 + 화장품이 물 세안보다는 당신의 피부를 더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