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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05. 2020

인구주택총조사

따로했던 밥벌이 씨리즈

 5년에 한 번 씩, 나라 안의 전 인구를 조사하는 정부 사업이 있다. 인구주택총조사. 내 생애 최초의 알바였던 찜닭집 홀서빙에 이어 두번째로 했던 일이 인구주택총조사원이었다.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 주로 중년의 주부들이 소일 삼아하는 조사원 중엔, 아마 전국을 통틀어도 최저 연령이었을 것이다.


 보름의 기한 동안 할당된 가구를 조사하면 찜닭집 한 달 치의 월급을 준다니 이런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구하게 된 행운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함께 교육받는 동료 조사원들이 죄다 어머니 내지 이모뻘이라 편히 대할 사람이 없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장점에 비하면 뭐 없는 거나 다름 없었다.


 정작 교육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저 집집마다 방문해 정해진 서식에 맞춰 질문하고 답을 받아적는 것이 어려울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육 시간 내내 나는 왜 인구주택총조사는 하필 5년에 한 번 밖에 하지 않는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발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씩은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교육 기간이 끝나고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남의 돈 벌어가는게 절대 쉽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찜닭집에 이어 두번째로 체감할 수 있었다.


 배부 받은 지도와는 전혀 다른 배치의 주거지들. 빈집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집에 있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대충 들었을 뿐이지만 분명 교육 내용엔 나와 있지 않았던 각종 예외 사항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뜻밖에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경계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아줌마가 아닌 젊은 남자가 조사원랍시고 벨을 누르니, 혹시 문을 열어주는 순간 강도로 돌변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입장도 지금은 이해한다. 그러나 남들에게도 선량하고 순수한 10대 소년으로 보일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열아홉 살의 나는 그들의 불합리한 경계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레 나는 한참을 눈물 반 호소 반으로 애원한 끝에 겨우 열린 체인 걸린 현관문 틈으로 조사원증을 집어넣고 나서야 현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때론 혹시 위조된 건 아닌지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목에 걸고있던 조사원증을 쭉 잡아당기는 바람에 거기에 딸려가며 켁켁거리기도 했다. 아 쫌, 너무 쎄게 땡기지 마세요!


 찜닭집과 그 이후에 했던 모든 일이 그랬듯이, 처음엔 당혹감 속에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조사원 일도 그랬다. 나는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경계심을 가라앉히는 법, 민감한 개인정보를 우회적으로 묻는 법, 혹은 물 한 잔 얻어마시는 법 등 그 후로도 여러번 유용하게 써먹은 능력을 습득하며 할당된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운 좋게 조사기간이 끝나고도 몇 달 더 일할 수 있었다. 조사한 내용을 전산으로 옮겨 입력하는 일이었다. 입력원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였던 건 마찬가지였고 남들보다 컴퓨터에 친숙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보다 복잡한 상세 조사 결과의 입력을 맡았다.


 굳이 써내지 않아도 자세히 관찰만 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을 적는 일반 조사와 달리, 무작위 가구에서 받는 상세 조사는 별의별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 물론 하루에도 수백 건의 데이터를 입력하다보면 기억이 뒤섞여 누가누군지 특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내 생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 지긋지긋하고 좁아터진 동네에 이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곳곳에서 저마다의 행복과 꿈과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걸, 때론 고민과 고통과 슬픔을 견디고 있다는 걸, 그 자명한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아파트나 도시의 전경, 줄지어 늘어선 주택 단지 등을 볼 때 나는 항상 그것이 품고 있는 수백 수천가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한번씩 생각해보게 된다. 인구주택총조사원 노릇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이다.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어쩌면 사랑할 수 있게 될 날이 온다면, 그 첫걸음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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