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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07. 2020

연휴의 끝

연휴 같은 거 없었음 좋겠어

 연휴가 다가오면 늘 그 며칠 전부터 단골 식당, 카페, 인쇄소, 약국에 묻곤 한다. 연휴엔 쉬시죠? 으레 긍정의 답이 돌아오고 난 라면으로 떼워야할 끼니와 늦춰지는 작업과 심해질 구내염이며 두통을 가늠하며 한숨짓곤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고시촌이다. 한 때 고단하지만 꿈많은 청춘의 성지였던 고시촌은 이제 꿈이 사라지고 고단함만 남았다. 비루먹은 청춘들이 광맥이 고갈된 폐광촌을 뒤적이는 들개처럼 서울 전역을 떠돌다 밤이 되면 모여들어 지친 몸을 뉘이는 곳이다. 공시든 행시든 경시든 공모전이든 시험과 결과는 1년 내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이 동네를 지배하는 고단함엔 늘 우울이 한 겹 덧씌워져 있다.


 특히나 심해지는 때는 연휴다. 길거리는 텅 비어 얼핏 모든 독거인들이 본가에 가버린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살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애초에 연휴와 무연한 수험생과 노동자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혀 단골 식당, 카페, 인쇄소, 약국의 휴업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 마치 무인도 조난자들처럼 각자 세 평 반 남짓한 저마다의 우주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에게, 알고 보면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수십 수백명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될까 의문이다. 마치 시간을 멈춘 초능력자처럼 쓸쓸하다.


 연휴는 끝났고 단골 식당, 카페, 인쇄소, 약국의 휴업은 끝났다. 큰 차이는 없다. 조금 더 시끄러워지고 조금 더 보행자가 많아진 것 외에는. 이 동네를 여전히 지배하는 고단함과 그 위에 덧씌워진 우울함까지.


 하지만 난 매일 밤 내일의 일출을 걱정했다는 고대 이집트의 사람들처럼, 되찾은 알량한 일상에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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