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두사에 치지 말고
언젠가 아는 형의 친구의 학교 후배였던 무명의 여배우와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녀의 동기가 모 영화에 출연했는데, 동기의 상반신 노출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그래도 여배운데...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위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그럴만도 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여'배운데, 요즘 같은 시대에 가능성으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상반신을 노출하는게 좋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그래도 여배운데...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연기해야 하는데... 가슴이 너무 작게 나온 거에요. 여'배우'로서 가슴이 작다는 이미지가 생기면 치명적이잖아요. 안 그래요?
누군가가 세상에는 세가지 성별, 즉 남자, 여자, 여배우가 있다라더니 과연 얘넨 다르구나 싶었다. 나쁘다는게 아니다.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르다는 것이다.
헌데 요새 들어서 그녀의 태도에는 그냥 다른 것 이상의 통찰이 담겨있던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그녀는 성별을 비롯한 여러 지엽적인 부분이 아닌 사람의 본질에 따옴표를 치는 부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