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힐링 그 놈의 힐링
티비없이 산 것이 10년은 넘은 듯 하다. 독거인이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제 티비라는 것도 점차 라디오와 비슷한 위치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나이든 사람에게는 냉장고 만큼이나 필수품이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해서 나도 가끔이나마 어머니의 집에서 요새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대부분 어머니의 집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잊을 정도지만 딱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잘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시골 펜션 같은데서 노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요리를 담당했다. 계란 프라이를 하려는데, 그만 계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갈등이나 위기랄 것이 거의 없이 슴슴하게 진행되던 해당 프로에서, 내가 본 분량 중에서는 유일하게 극적인 장면이었다. 슬로우 모션과 반복 재생, 경악에 찬 출연자들의 호들갑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모습에 나는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역겨움을 느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중에 어느 가난한 고학생이 나온다. 남아있는 마지막 돈으로 계란 한 줄을 샀다. 그걸로 열흘을 버텨야할 참이다. 물론 또 그 뒤는 막막할 뿐이다. 여튼 그렇게 하루에 계란 한 알로 버틴지 여드레 쯤 되는 날, 허기로 떨리는 손이 마지막에서 두번째인지 세번째 계란을 떨어뜨리고 만다. 계란의 내용물은 더러운 마룻바닥에 드러난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최소한 노른자만이라도 살려보려고 한다. 손으로 노른자를 건져보려 하지만 노른자와 바닥의 틈새를 파고들기에 손날은 너무 두꺼울 수 밖에 없다. 의지를 가진 양 엉망이 된 마룻바닥을 이리저리 옮겨가던 노른자는 결국 썩어서 벌어진 마룻바닥 틈새로 쫄-깃하게 쏙 빠져버린다. 화자는 위의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결코 경악하지도, 호들갑을 떨지도, 절망에 찬 비명을 지르지도 않는다. 그가 겪고 있는 사건이 언뜻 보는 바와 달리 얼마나 큰 시련인지는 읽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계란 떨어뜨린게 큰일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뭐 또 한편으로는, 매스미디어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별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거울이 반전된 모습을 비추듯 매스미디어도 반전된 현실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고작 계란 떨어뜨린게 그렇게 큰일이라면, 우리의 현실은 대체 얼마나 팍팍한 것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