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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27. 2024

아류의 세계

소비 말고 창작하라고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샤로수길'이라는 곳이 있다. 서울대 정문의 모양에서 따온 음절 '샤'와 가로수길을 합친 이름일게다. 본래 서울대생을 비롯한 근방 주민들이 부르는 애칭 같은 거였는데, 몇 년 전부터인가 정식 명칭이 되어버렸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별명은 별명으로 남겼어야했다. 일어나기 힘든 우연이 거듭되어 그곳이 차세대 핫플레이스가 되더라도 영영 신사동 가로수길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바나나를 덕트테이프로 벽에 붙여 예술작품이라 우긴적이 있다. 다른 누군가가 그걸 떼서 먹었다. 작가는 태연하게 새 바나나를 붙이고 여전히 그걸 예술작품이라 칭했다. 첫번째 바나나는 긴가민가 싶지만, 두번째 바나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아마도 바나나를 먹은 사람과 사전에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작년인가 해당 작품이 국내에도 전시됐다고 한다. 누군가가 또 그걸 먹었고, 주최측은 태연하게 새 바나나를 붙였다. 이 경우엔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었을 것이다. 바나나를 먹은 이는 화제가 되지 않는 것이 뜻밖이었는지 이를 알리는 게시물까지 지 손으로 에쓰앤에쓰에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이라 불릴 수 있을지 긴가민가한 무언가를 먹어치움으로써 작품으로 만드는 마술은 일회성이다. 두번째부터는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창출하지 못했고 자신의 미숙함과 그닥 건강하지 못한 인정욕구만을 드러내며 엉뚱하게 그를 알지도 못하고 아무 관련조차 없는 애꿎은 내 얼굴만 달아오르게 했을 뿐이다.


 최근엔 누군가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했다. 1차 범행은 남의 돈 벌어먹는게 쉬운 줄 아는 철부지들의 소행이었고 2차는 비루하고 공허한 내면을 예술가연 하는 것으로 가리려 드는 친구였다. 나의 지난 날과 다소 겹치는 부분이 보여 안쓰러운 마음도 조금 들지만, 그 열등감과 인정욕구가 언젠가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나 플라톤이 자못 경멸을 담아 말한 복제의 복제도 되지 않을, 아마도 아류의 아류의 아류의 아류 쯤이나 될 서툰 객기를 보니 벌써부터 텄다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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