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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16. 2024

먹고 사는 일

밥벌이의 지엄함

 코로나 직전 망해버린 편의점 막판엔 어차피 곧 문 닫을 매장이니 정말 맘대로 했다. 그간 상상만으로 해왔던 말들을 실제로 입밖에 꺼낸 것이다. 여기 물건은 왜 이렇게 비싸요? 요 아래 매장은 훨씬 싼데. 그럼 거기 가서 사세요. 봉투 드릴까요? 그럼 이걸 다 손으로 들고가요? 손 아니면 발로 들고 가시려구요? 담배 그림 좀 바꿔줘요. 끊을 거 아니면 그냥 피우시죠. 폐암 걸리는 건 그림 때문이 아닌데. 여긴 화장실 없나요? 예, 없어요. 그럼 그 쪽은 화장실 안 써요? 전 당연히 직원용 화장실 쓰죠. 정 급하시면 면접 일정 잡아드려요?


 문 닫기 이틀 전에는 만취한 아저씨와 그를 직장 상사로 모시고 있는 듯한 덜 늙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만취 아저씨가 반말을 하는 바람에 언쟁이 좀 있었다. 아드님 나이랑 제 나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정 그러시면 집에 가서 아드님한테 반말 실컷 하시죠. 아드님이 아시면 쪽팔리시니까 얼른 나가세요. 난동을 부리는 만취 아저씨를 덜 늙은 아저씨가 필사적으로 끌고 나갔다.


 잠시 후, 만취 아저씨를 귀가 시킨 듯한 덜 늙은 아저씨가 돌아왔다. 그는 내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청년, 나는 그 쪽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해요. 멋있어요. 진짜 용기 있어요! 그는 250원짜리 츄파츕스 하나 사지 않고 도로 나갔다. 필요한 것도 없으면서 내게 저 말을 하러 일부러 돌아온 것이었다.


 거참, 그제야 쪽팔림을 느꼈다. 난 용기가 있는게 아니라 잃을게 없었을 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 흔한 주취 폭력범처럼. 같은 이치로 덜 늙은 아저씨는 비굴한게 아니라 지킬게 있었을 뿐이다. 어른들의 비굴함을 함부로 비웃는 객기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난 언제나 철이 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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