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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02. 2024

어느 료칸집 딸의 기억

and boy from edge of seoul

 호주 대륙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섬 타즈매니아의 팜워커 호스텔에서 일할 때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 아키는 일본의 그 유명한 교토 출신, 게다가 료칸집 딸이었다. 업무 특성상 휴일이 따로 없어 서로 상의해서 한가한 날 돌아가면서 쉬었다. 함께한 초반에, 자긴 괜찮다길래 나 혼자 두 번 연속 쉬었다. 세 번은 좀 양심에 찔려서 내일은 네가 쉬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자긴 괜찮으니 바로무 니가 쉬라는 것이었다.


 친구야, 나는 벌써 두 번 연속 쉬었어. 다시 말해 너는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일은 네가 쉬는게 옳다는게 내 의견이야. 그래도 아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숫제 정색을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게 아닌가. 바로무, 난 정말로 괜찮아.


 난 고개를 갸웃했다. 료칸집 딸로 일하던 친구라 이 정도 업무는 안 쉬고 해도 괜찮은 건가? 괜찮을리 없을 것 같지만 하여간 저렇게 정색을 하는데 계속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다음날 또 쉬었다. 그리고 저녁에 사장에게 불려가서 잔소리를 들었다. 동료에 대한 배려가 없는 놈이라는 것이다. 아키가 바로무만 3주 연속 쉬는 바람에 자긴 쉬지도 못했다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관둘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발.


 그러니까 나와 아키는 한국어와 일본어 이전의 영역에서 아예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어 문화권에 가니 동북아가 고맥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는 것을,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 꽤나 고맥락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지만 그 명성높은 일본 교토 출신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나중에 같은 교토 출신에, 원어민 수준의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도 꽤 높은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한참을 웃다가 교토 기준에선 내가 잘못한게 맞다고 했다. 우선 최소 세 번을 권해야 했고, 그래도 싫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받아들이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내일 쉬든 말든 나는 출근할 거야. 너는 안 쉬고 나와도 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몹시 화가 나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뭐 비슷한 종류의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나와 아키는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긴 했다. 마치 극심한 방언 사용자들을 대하는 것처럼 되묻거나 넘겨짚어야 하는 상황이 많긴 했지만.


 어쩐지 만우절이 되니 그 생각이 난다. 늘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껏 살아가야 하는 삶에 한 해 하루쯤은 새삼 유머와 여유를 가지는 게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날도 하루쯤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만총절 같은 거 말이다. 그럼 당연히 내가 쉬어야지 넌 2주 연속 쉬고 양심없이 한 주를 더 쉬려고 했어? 라든가, 네 휴일은 네가 챙겨야지 어린애도 아니고 미련하게 남이 챙겨주길 기다리니? 같은 말을 해도 뒤끝이 없는 날 말이다.


 그래도 막바지에 아키와 나는 꽤 친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아키의 언어를 어느정도 이해한 것처럼 아키도 나의 언어를 이해한 것 같다. 아키는 일본애들이 으레 그랬듯 엑셀을 못해서 공익하면서 배운 수준인 나의 실력이 압도할 지경이었다. 나는 농담삼아 너는 교토 촌년이라 이런 거 못하고 나는 서울 씨티즌이라 잘 한다고 했다. 아키는 그래봤자 엣지 오브 서울 출신 주제에 잘난척 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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