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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ul 16. 2024

짧고 강렬했던 나의 리즈시절에 대하여

밖으로~ 나가버리고오오오오오

 태어난 뒤 2년 남짓한 기간은 내 미모의 짧은 전성기였다. 그 모습을 목도한 어른들은 당시 유행한 이승철 노래를 연상시키는 고음을 길게 뽑아내서 어린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머니가 동네 시장에서 배추를 고르고 있던 어느 날, 주인집 아줌마가 나를 발견하고 평소보다 훨씬 긴 고음을 뽑아냈다. 마주오던 행인은 테러나 괴물체의 출현, 3세계 재래 시장을 뒤엎는 헐리웃식 카체이싱이나 그에 준하는 일이 일어났나 싶어 화들짝 뒤를 돌아봤다.


 아줌마는 날 품에 안고 새댁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장을 보는 동안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자기 눈에만 보이는 배추의 부족한 품질을 암시하는 갖가지 흠결을 지적하며 치열한 흥정을 벌이고 있던 참이라 미처 듣지 못했다.


 적절한 가격으로 흥정에 성공했던 배추는 그대로 시장 바닥에 널부러졌다. ‘산발한 미친년’이 되어 온 시장을 헤집었다. 워터 프루프가 없던 시절이라 새댁의 부끄러움만 살짝 가리는 수준의 연한 화장이나마 영망진창이 되어버려, 어머니는 검은 눈물을 흘리며 시장 상인들을 기겁하게 했다.


 검은 눈물이 다시 맑아질 무렵에야 천연덕스럽게 나를 안고 있는 이웃 아줌마를 발견했다. 그 품에서 편히 잠든 나 또한 못지 않게 천연덕스러웠다. 어머니는 평생 입에 담아본 적 없는 어휘를 벼락처럼 내뱉었다. 이후 한동안 현장 근처에 있던 상인들과의 가격 흥정이 한층 더 수월해진 것으로 그 과격함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하게도 평생 귀에 담아본 적 없는 어휘를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새댁으로부터 듣게된 아줌마는 무어라 답할 틈도 없이 나를 내어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하지 않냐고 겨우 항의했지만, 상황을 파악한 주변 상인들이 새댁의 역성을 들었으므로 애써 콧방귀만 뀌면서 자리를 피했다.


 바닥에 내던져서 행인의 발밑을 뒹굴었던 재료로 만든 배춧국에 저녁을 먹던 아버지는 예의 사건을 전해듣고 허공에 배추조각이 분분하도록 대노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충분히 비난했으니 당신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일이 더 커질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노의 대상은 주인집이 아닌 어머니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제 자식이 사라지는 것도 모를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유행하던 유괴범이었으면 어쩔려고 그랬냐고도 했다. 누누히 말하지만 정말이지 당신은 정신머리 없는 여편네라고도 했다.


 어머니는 진작에 반쯤 녹아내려 햇볕아래 쮸쮸바처럼 찐득찐득한 애간장을 고려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사무치도록 서운해서 멀리 시간이 흐르도록 한이 되었다. 나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된 이후로 상기의 사건을 수십번 반복해 들은 끝에 마치 나 자신이 겪은 일인 것처럼, 물론 내가 겪은 일이 맞긴 하지만, 하여간 그런 것처럼 남에게 대신 설명해주는 것도 가능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예의 아줌마와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한 편 속으로는 어머니의 주의력 결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구나 한다. 아버지 또한 늘 틀린 말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시 한 편 마음 속 더 깊은 곳에서는, 차라리 그 길로 주인집 아줌마에게 키워진 인생은 지금과 얼마나 다른 모습일지 상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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