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미처 퍼올리지 못할 아버지의 세계
이집트 피라미드는 누가 지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이집트의 파라오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초의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공사를 주도했다는 고대 이집트의 재상 이모텝을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집트의 백성들이 지었다고 말하겠다.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공급한 권력자나 그것을 활용해 대역사를 설계하고 주도한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가진 몸뚱아리 하나로 수십 킬로 떨어진 채석장에서 석회암을 채취하고, 연마하고, 옮겨서 쌓아올린, 역사가 미처 퍼올리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은 누가 만들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대한민국 정부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철도공사나 그와 비슷한 기관에서 만들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남지 못할 평범한 사람들이 사당역을 만들었다고 말하겠다. '쎄멘(시멘트)'을 비비고, '쓰미(벽돌 쌓는 작업, 혹은 벽돌공)'들이 쌓아올린 벽돌과 벽돌 사이의 틈새에 '메지(줄눈 작업, 혹은 줄눈공)'를 하여 메운 이들. 이를테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말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호주에 갔던 때와 같은 나이에 사우디에 송유관을 묻다가 귀국한 아버지는 한동안 놀다가 아는 형을 따라 공사판에 진출했다. 평범한 메지 데모도(보조공, 메지 데모도의 경우엔 주로 쎄멘을 비비고 옮기는 일을 한다)로 시작하여, 기술을 배워 메지가 됐고, 이후로는 당당한 메지 오야(하나의 팀을 이끄는 팀장)로서 민주화 이전 고도 성장기의 매우 미세한 한 축을 담당했다.
메지에는 특이한 도구가 필요하다. 'ㄱ'과 'ㄴ'자가 수직축을 공유하여 결합된 형태를 띄고 있고, 가로축 하나에 청테이프나 전열테이프를 감아 손잡이를 만든다. 간혹 어엿한 목제나 플라스틱제 손잡이를 달기도 했으나 오히려 고참들은 쓰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들이 버티컬 마우스를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짧은 것은 줄눈의 세로줄을, 긴 것은 가로줄을 채우는데 쓴다. 보통 세로줄을 신참이, 가로줄을 고참이 맡는다.
세로와 가로에 따라 받침대도 다르다. 세로줄은 U와 V를 합쳐놓은 듯한 단면이 나오도록 구부린 쇠판을, 가로줄은 넓고 반듯하며 아래쪽에 손잡이가 달린 것을 쓴다.
세멘을 얹은 받침대를 빈 줄눈 아래에 놓고 상기한 도구로 밀듯이 줄눈을 채워넣은 뒤, 매우 미묘한 힘조절을 통해 다진다. 세멘이 굳으면, 벽돌의 틈새를 단단히 메워 붕괴를 방지하게 된다.
물론 작대기도 받침대도 기성품으로 파는 것은 없었기에 아버지는 몇 년에 한 번 씩 동네 철공소에 가서 직접 설계한 도구들을 주문하곤 했다. 아버지는 캐드나 설계도 작성 능력이 없었으므로 오직 말로 설명해야 했다. 언젠가 학교 돌아오는 길 동네 철공소를 지나가다 이번 달 실적 1위를 앞둔 영업사원처럼 열정적으로 무언가 설명하는 아버지와, 난감하다는 표정의 철공소 사장을 본 기억이 있다.
19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중앙대 안성 캠퍼스 교수연구동을 지은 적이 있다. 언젠가 그곳을 모교로 둔 사람을 만나 교수연구동 쎄멘은 내가 비볐기 때문에 근처도 가지 말라고 했더니, 상대는 왜 쎄멘을 더욱 허술하게 비비지 않았느냐고 개탄했다.
뭐 하여간, 아버지는 나에 비해 자신이 일익을 담당한 건축물에 대해 상당히 자랑스러워 하는 편이었다. 특히나 사당역에 대해 그러했다. 아버지는 사당역 부근을 지날 때마다 자부심 어린 얼굴로 사당역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그러냐고 천진하게 감탄했다. 조금 머리가 굵어지고 난 뒤엔 냉소했다. 그건 나라 내지 철도공사나 그와 비슷한 기관에서 만든 거지 아부지가 만든게 아니잖아요. 스무살이 지나자 진심으로 경멸했다. 적지 않은 아들들이 그러하듯 있으나 없으나 세상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실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들어서, 실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제는 다시 아주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 다시금 천진하게 감탄하곤 한다. 우와, 이거 아부지가 만들었어요? 유감스럽게도 혼잣말이다. 그 말을 들어줄 아버지는 이제 없다.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교통의 요지이기에 이따금 사당역을 간다. 무심결에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려 하지만 그런게 남아 있을리 없다. 아버지의 흔적은 모든 부품을 갈아끼운 테세우스의 배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테랑 메지 팀을 이끌며 넓고 판판한 받침대에 쌓인 쎄멘을 긴 막대로 밀어 절묘한 힘조절로 다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