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

소설 구상

by 김바롬

내가 그랬듯이 '장도'라고 하면 조금 낯설 것이다. '은장도'라고 해야 익숙하다. 은장도는 다름 아닌 은으로 장식한 장도라는 뜻이다. 정식명칭은 장도(粧刀). 단장할 장자를 쓴다.


그 이전의 이름은 주머니 낭자를 쓴 낭도였다. 신라시대에도 남녀가 주머니 칼을 패용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풍습이 된건 아무래도 고려시대 원나라 간섭기인 듯 하다. 다들 말을 타고 다니니 높은 분 아니고서야 직접 안장도 올리고 뱃대끈이니 뭐니 하는 것도 조절해야 했을 것이고 주머니 칼 하나쯤 상시 갖고다니는게 실용적이었리라 짐작 가능하다.


해당 풍습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북방 출신이었던 이성계의 영향일까? 칼로서의 실용성은 점차 줄어들고 장식의 용도가 강해져서, 단장할 장자를 붙여 장도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나무는 물론 대모갑, 옥, 심지어 금과 은을 쓰기도 했다. 특히 금과 은은 통용화폐로 쓰이는 귀금속이고 장식 용도로 쓰는 것은 왕족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실록에 금장도와 은장도를 금지하자는 얘기도 나온다는데 별 실효성은 없었던 듯 싶다.


강해지는 장식성 대신 실용성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아예 날을 세우지 않거나 애초에 뽑히지도 않는 벙어리 장도라는 형태가 나오기도 한다. 여기다 실용성을 되살리겠답시고 옆에 젓가락을 꽂는 형태도 생겨나는데 영 뻘짓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장도의 역할은 다시 한 번 바뀐다. 드디어 우리가 흔히 아는 '은장도'가 등장한다. 이제 장도는 실용성도, 장식성도 아닌 절개와 순결이라는 가치를 나타내는 (뭐 그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는 둘째 치고)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실용성에서 장식성으로, 그리고 상징성으로. 당연하게도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 바로 예술이다. 원시의 예술은 노동의 효율을 높이거나 (가죽 말리는 틀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북) 지식의 전달 수단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등 실용적 목적이 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되었고, 요새 와서는 다들 불평하듯이 아름다움은 거세되고 오로지 상징성을 추구한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구한 말이나 강점기 무렵의 울산 쯤이다. 왕실의 의전용 칼을 만드는 장도장이었으나 쇠퇴한 왕실에서 나와 그곳에 정착한 조상을 둔 남자다. 그는 장도에서 조각난 실용성과 아름다움과 상징성을 다시 되찾은 물건을 만드려고 한다. 장도에 미친 남자고, 아들은 그에 진저리를 치며 그를 떠난 지 오래다.


어느 날, 외지에서 산판꾼으로 살던 아들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10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여전히 장도에 미쳐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어라 말할까?


아마 그게 첫 대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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