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편 23

아포페니아

by 김바롬

-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득이다. 저 유명한 파스칼의 말이다. 생각하는 갈대답지 않은 뻘소리라고 여겨 왔는데 요즘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신이라는 단어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된다. 꿈이든 희망이든, 뭔가 긍정적이면서도 낡은 단어를 가져다 놓으면 제격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소련과의 양면 전선을 펼치는 순간 그 패배가 결정되었다는 글을 읽었다. 그것이 옳다면 이후 수 년 간은 쓸데없이 사람만 죽고 자원만 낭비한 셈이다. 그런 결정적 순간의 맹점은 늘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혹 내 인생도 이미 결말을 확정지은 분수령이 지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그 때는 언제일까? 20살의 가출? 한참 늦은 나이에 떠난 워홀? 서른 넘은 주니어로 들어갔던 스타트업의 퇴사? 아버지의 존재? 이리저리 변죽을 울려봐도 결국은 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후 모든 것은 정해져있고 나는 모르고 있을 뿐이다. 기묘하게도 그런 운명론적 관점이 오히려 나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준다. 파스칼이 말하고자 했던 신이 결국 이런 거 아니었을까?


- 물론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아니었어도 뭔가 쓰긴 했을 것이다.


- 그러나 신앙이 과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신앙은 신앙을 신앙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 금지된다. 나에겐 너무 가혹한 조건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 모양 이 꼴인 것일까?


- 아직도 나의 창작은 별달리 경제적 가치와의 교환이 순조롭지 않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나의 창작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는 것과 사람들의 필요를 조작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를 기다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세 꼭짓점에서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모양새가 지난 20년 간의 요약일지도 모른다.


- 헌데 그럼에도 좀처럼 후회가 되지 않는다.


-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해도 별다른 의미는 없다. 의미란 사실과 의견의 기묘한 조합이니까. 우리집 변기랑 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 저 유명한 뒤샹의 샘처럼 말이다.


- 내가 견딜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자기 성찰이 있다고 착각하는 자기 성찰 없는 부류이다. 물론 어디가서 말은 못한다. 누군가에겐 나 또한 자기 성찰이 있다고 착각하는 자기 성찰 없는 부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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