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해답 찾기

by 김바롬

아, 여기에서 나가야겠구나. 살면서 수백 번은 해본 생각이지만 최근의 것은 각별했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이끌어낸 것이 함께 일하는 부장의 노상방뇨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중이었다. 수리건으로 출장을 나왔다. 사람이 없어 내부 조립 요원인 내가 시다로 끌려갔다. 공구함과 사다리를 꺼내놓고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근처 풀 숲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근교 도로변에 어인 계곡이란 말인가 하며 고개를 돌려보았다가, 나는 그 꼴을 보고야만 것이었다.


그게 왜 내 영혼에 그토록 깊은 상처를 줬는지 설명하기 힘들다. 나한테 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확실한 건 내가 혐오감이나 한심함 대신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는 것이며, 그 말미에 확신처럼 예의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아, 여기에서 나가야겠구나.


허나 당장은 대안이 없다. 연초 그토록 날 힘들게 했던 생활고가 지금의 고통보다 덜했다는 확신이 없다. 중이 절을 떠날 수없다면 여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려 하는게 옳지 않을까?


사장과 면담을 신청했다. 삼촌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끝까지 깍듯하게 사장님이라 칭하며, 아, 물론 노상방뇨 얘기도 하지 않고, 나의 업무 지속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장은 우선 자신의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 관련된 그닥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철학을 중언부언 늘어놓았다가, 첫 사업 실패 후 죽을 결심을 하고 관악산을 올랐던 사연, 그리고 또 두 번 더 반복해 얕은 철학을 설하고는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솔루션이 없음을 시인했다. 넌 내가 뭔 말을 하는지 알겠냐?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이렇게 영혼을 깎아 먹으며 버티는게 옳은 것일까. 뒷일은 생각치 말고 확 관둬버릴까. 고민하던 중 뜻밖에 연락을 받았다. 몇 년 전 이렇게 영혼을 깎아 먹으며 버티는게 옳은 것일까. 뒷일은 생각치 말고 확 관둬버릴까, 하고 고민하다가 확 관둬버렸던 전 직장의 상사였다. 새로운 자리에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데, 제너럴리스트하니 첫번째로 내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도 스타트업도 작가 모집에도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이력서를 가진 내게 '네가 필요하다'고 말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서술하는 건 생략하기로 하자.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이 결국은 이 일 저 일 다 시켜도 군말없이 해줄 사람이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는 얘기도 넣어두자. 나의 걱정은 흔히 말하듯,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든 지금은 과대평가되고 예전은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오만정이 떨어져서 관뒀던 그곳이 그나마 지금보다는 낫다는 나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세 명에게 조언을 구했다. 셋 다 나의 지난 회사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그건 고민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에 조금 놀랐다. 한 명은 다음날 다시 전화와서 꼭 하라고 당부했다. 흡사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사람이 힘겹게 결심한 이혼을 번복할까봐 걱정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였다.


사장은, 아니 삼촌은 꽤나 섭섭해 했지만 딱히 질척거리지는 않았다. 운전면허 학원비 명목으로 받았던 지원금을 돌려줬다. 삼촌이 아니었다면 돌려주지 않았겠지만 삼촌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지원비도 없었을 것이다.


첫출근까지의 3주간의 시간이 끝나간다. 열심히 작업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쉬려고 했는데 이도저도 제대로 되진 않았다. 이전의 상처를 회복하느라 그랬는지, 나는 원래 출퇴근을 하지 않으면 풀어지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이제와서 돌아켜보면 필연적이었다고 느껴지는 퇴사의 이유를 되짚어보기 위해 쓴 글이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체 뭐가 그렇게 끔찍했던 걸까?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간 만나왔던 빌런에 비하면 소악당에 불과했다. 일도 쉽지 않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편의점도 그만큼은 힘들다. 뭐, 인생의 모든 것의 해답을 낱낱히 찾아가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영 나랑 안 맞았다 하고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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