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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Nov 24. 2020

십훨십훨

내가 올웨이즈 했던 것

 시드니 주방에서 난 늘 화가 나 있었다. 물론 즐겁고 행복하게 했던 밥벌이가 있긴하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곤궁하다. 그러나 머쓱하게 뒷통수를 긁적이다가도 한 마디 쯤은 덧붙일 것이다. 너도 주 80시간 씩 일해 봐, 쌍놈아.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엔 광둥성 출신 아줌마가 있었다. 난 그녀를 메이 이모라 불렀다. 비록 그녀가 해주는 광둥성 홈메이드 스타일의 청경채 볶음은 입맛에 안 맞았지만, 게다가 나보고 궹-뉌스타일을 부른 가수와 닮았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선 좋은 사람이었다.


 영어 베이스에 눈치로 깨친 한국어를 토핑해 기묘한 영한 혼용어를 사용했던 메이 이모가 하루는 내게 물었다. 부에뤔~ 와이 너 올웨이즈 십훨십훨 해?


 어찌됐든 어머니 뻘 이모의 지적에 적잖이 당황했다. 제가요? 언제요? 맨날맨날. 커스퉈머-ㄹ 오면 십훨. 오더-ㄹ 오면 십훨. 오너-ㄹ가 뭐 시키면 (한결 작은 목소리로) 십훨. 올웨이즈 십훨십훨 해~


 돌이켜보면 난 마틴 스코세지의 영화만큼이나 욕을 많이 했다. 처음 배웠던 학창시절에는 하도 욕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피씨방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고, 서른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는 판소리의 고수 추임새처럼 자연스러워서 스스로는 인지조차 힘겨운 수준이었다. 뭐, 대사로 칭송받는 옛 승려들도 때론 육두문자로 중생의 묵은 영혼을 후려치지 않았나. 한 때는 욕하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식당이 흥하기도 했고. 심지어 욕 잘하는 것으로 인기를 끄는 배우도 있다.


 물론 그런 건 다 변명이란 걸 안다. 내 욕설이 문제가 아니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주 80시간의 비인간적 노동.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하는 호주땅의 외노자들. 아직도 팽배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사건사고. 날로 심각해지는 내륙의 사막화와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산불. 몇 안 되는 차량 좌측 통행 국가인 덕에 세계에서 가장 접촉사고가 빈번하다는 시드니 도심. 뭐 이런 것들에 비하면 나의 욕설쯤은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이걸 메이 이모가 알아듣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도리없이 난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고 그 후로는 십훨십훨을 자제하기로 했다.


 어째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인생 가장 오랜 버릇이었던 십훨십훨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몇몇 위기가 있긴 했지만, 메이 이모의 영한문 혼용체 꾸중 덕에 전보다는 훨씬 건강한 정신머리로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시드니 주방에서 날 화나게 했던 건 주 80시간이 노동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노자들도 팽배한 인종차별도 내륙의 사막화도 차량 좌측 통행도 아닌 입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하던 십훨십훨이 아니었는지 고쳐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후에 경험한 바로, 호주 어느 깡촌에서 청경채 키우는 소규모 농장주도 한국어 욕 두어개 쯤은 알고 있다는 기억이다. 나 같은 이가 한둘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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