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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Nov 02. 2020

무의미한 용건은 얼마만인지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해 연기 경력도 있는 시인이 밤 새워 술을 마신 어느 날, 아마도 취기 덕이겠지만, 휘영청 밝은 달이 너무 아름다워 친한 선배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형, 달이 무지하게 밝아!”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응.” “이 미친놈아, 지금 새벽 세 시야! 끊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달이 떴던 어느 새벽 세 시, 그 짧은 대화가 준 영감으로 탄생시킨 작품이 위의 시라고 한다.


 그저 우스운, 그리고 천연덕스럽고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자찬도 조금 담긴 일화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인이 본 것과 닮았을 달이 떴던 어느 새벽, 그저 달이 참 밝아서 전해온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비록 맥스웰 방정식도 반도체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우리였지만, 공과적 감성의 정수라 할만한 손바닥만한 쇳덩이를 통해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너와 달빛의 아름다움을 같은 시간에 공유하고 싶다고, 너 또한 아름답고 멋진 것을 보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제일 먼저 떠올렸으면 한다고, 새삼 쑥스러운 말이지만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다 제껴두었다. 이미 달빛이 아름답다는 말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기고 만지고 안고 웃고 울고 밀고 물고 찌르고 할퀴는 뻔한 이야기 끝에 우리는 결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서로의 마음 속에 단단히 묶어둔 매듭은 아마 죽을 때까지 풀 수 없을 테다. 앞으로도 달을 보면 널 생각하겠지만, 그럴 땐 지금도 늘 품고 다니는 쇳덩이를 꺼두기로 하자. 흔히 스마트폰 시대엔 원한다면 언제나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낭만이 없다고들 하는 의견에 애써 동의하는 척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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