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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26. 2020

크랩 멘탈리티

너무 지나친 걱정은 걱정이 아니었음을

 호주로 떠나기 전 주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격려해줬지만 호들갑을 떨며 말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호주는 총기 허용 국가인데다 인종 차별과 묻지마 범죄와 마약의 천국으로,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땡전 한 푼 없이 잃은 마약 중독 거렁뱅이가 되어 그나마 운이 좋아야만 고국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어째 걱정이 아니라 저주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흥미롭게도 날 저주... 아니,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겐 단 한 명도 벗어남이 없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호주는 커녕 고작 며칠 일정의 여행 외에는 외국에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내심 마음 속에 남아있던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었으니 그들 또한 날 응원한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공사현장, 물류창고, 생활용품점을 거쳐 시드니에서 마지막으로 구한 일은 중식집 주방보조였다. 요리라고는 계란 후라이도 제대로 할 줄 몰랐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굶어죽지 않으려니 별 수 없었다.


 날마다 태어나서 그 때까지 해본 양의 몇 배는 될 설거지를 해치웠다. 한국에서 여름에 먹은 그릇을 이듬해 봄에나 닦을 만큼 설거지에 게을렀던 죄를 갚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부모집에 얹혀살던 시절에도 설거지 한 번 돕지 않은 벌인지도 몰랐다. 불효자는 눈물을 흘렸다. 설거지 틈틈히 내 몸무게 만큼의 양파를 까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남들에 비해 호주까지 온 목적이 흐릿하긴 했지만, 적어도 시속 950킬로로 다섯시간 반을 날아서야 종단할 수 있었던 이 거대한 땅덩이에서 좁아터진 주방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님은 확실했다. 한국에서처럼 맘에 안든다고 대책없이 때려치웠다간 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게 뻔했다. 고심 끝에 타즈매니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워홀의 꽃(나 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본 적 없지만), 농장일을 경험해볼 생각이었다.


 주변인들에게 (그래봤자 죄다 식당 직원들이었지만) 농장행을 밝히자 대부분 호들갑을 떨며 뜯어말렸다. 호주의 시골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지대인데다가 위험한 야생 동물의 천국으로, 악덕 농장주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도 땡전 한 푼 건지지 못한 채 거지꼴로 돌아오리라는 내용이었다. 어째 걱정이 아니라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았다. 그들 또한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었다. 이 거대한 땅덩이까지 와서 몇 달 동안, 길게는 수 년 동안 시드니 밖으로는 제대로 나가본 적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불과 며칠 전, 외국 한 번 제대로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가겠다는 자신을 걱정을 가장한 저주로 뜯어말렸던 한국의 지인들을 신랄하게 비웃었던 조리장 형이, 이제는 내게 너 농장가면 망한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타즈매니아에서의 생활은 감성 충만 힐링 에쎄이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제와서 그들을 비웃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들의 마음에도 진심어린 걱정이 전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변인들을 자신과 비슷한 위치로 끌어당기고자 하는 욕구, 이른바 크랩 멘털리티 또한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임을 이제는 안다. 다만, 인간의 모든 욕구는 적절히 객관화되고 통제되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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