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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19. 2020

그녀

아직 건강하기를

 꽃처럼 고왔던 그녀는 나이 스물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하나 있던 딸은 백일이 채 되지 않았다. 그녀의 피눈물을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난 딸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 또 한 번의 삼십 년이 지났다. 그녀는 이제 여든 살이다. 시릴만큼 아름다웠던 미모는 주름진 얼굴 아래 흔적만 남았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 복지관에서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에는 임대 아파트의 좁은 방 안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장롱에는 안동포로 속아서 산 나일론 섞인 수의와 복지관에서 찍어준 영정사진이 들어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씩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한다. 그녀는 항상 자동으로 욕조까지 들어가게 해주는 체어리프트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욕조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봉사자들은 그녀가 미끄러질까봐 걱정하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 그녀는 봉사자들이 내미는 손도 거절하고, 아주 천천히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욕조에 들어간다.


 목욕이 끝나면 그녀는 이번에도 고집을 부려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옷을 입은 뒤 하얀 머리를 곱게 빗는다. 밖으로 나와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녀 나이의 반의 반밖에 안 되는, 한 일이라고는 전기선, 호스 연결과 줄담배 피우기 뿐인 공익에게도 깍듯이 인사한다. 그녀는 공익의 손을 잡아 챙겨왔던 종이봉투를 걸어놓고 서둘러 몸을 돌려 걸어간다. 봉투 안의 빵과 과자, 과일을 확인한 공익은 얼른 뒤따라간다. 나름 최고 속도를 냈던 그녀는 금방 따라잡힌다. 종이봉투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실갱이하다가 끝끝내 건내 준 그녀는 다시 지팡이를 짚으며 임대 아파트를 향해 걸어간다.


 그녀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공익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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