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탈출기 3

급한 결말

by 김바롬

이틀 간 약 마흔 시간을 잤다. 꿈에서는 페러글라이딩을 탔다. 운동장에서 마구 달리며 속으로 다섯을 세고, 살짝 점프하면 세상이 아래로 쑤욱 내려가 순식간에 수십미터 상공으로 떠올랐다. 상공에서 보는 지상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종종 구글 지도 앱을 켜 방향을 확인했는데 내가 어디로 가고자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드물게 즐거운 꿈이었다. 꿈인 줄 알았으면 깨어나기 싫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고도 나의 기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지? 숨쉬기와 걷고 균형잡는 등 최소한의 생리적 기능과 먹고 싸고 자기를 포함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능 외에는 작동하는게 별로 없었다. 때론 전술한 기능마저도 오작동을 거듭했다.


다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지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니까 머나먼 옛날에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한몸이었다고 하는 수준의 속도였다. 이러다 남은 생애 내내 재활만 하다 마감하는 건 아닐까?


이따금씩, 그러니까 관악산 산책이나 샤워 후 드라이기 대신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연재가 진행 중이라 안 해버릴 수가 없는 윤문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정말이지 이따금씩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워낙 낯선 감정이라 그 이름을 떠올리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수십미터 아래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지상을 바라보는 느낌. 바로 희망이었다.


그럼 감정은 금방 사라져버렸지만 기억은 남았다. 그러니까, 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된 셈이다. 이제 지도 앱을 켜서 방향을 확인해야 하지만, 그 과정은 그냥 통과하기로 하자. 태양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 터무니없는 방향이었다 하더라도, 뭐 그러면 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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