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랍스터

너 나 우리 모두

by 김바롬

월요일 아침, 나는 스타벅스에 있다. 집을 나와 지류가 본류에 합쳐지듯 점점 규모가 커지는 출근의 스트림에 휩쓸려 함께 걷다가, 마지막 버스정류장에 줄을 서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살짝 빠져나와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몇몇은 나의 뒷통수를 노려보며 질시의 눈빛을 보냈다고, 나는 이에 맞서 어깨를 으쓱하며 젠체했다고 상상한다. 난 백수지롱. 출근 안하지롱.


생각보다 머지 않은 옛날 영국에서는 매주 한 번 죄수들에게 랍스터를 배급했다고 한다. 랍스터 배급 빈도를 늘리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좌절 되었는데, 아무리 죄수라 한들 랍스터를 먹이는 것과 같은 '끔찍한' 처벌을 하는 것은 주 1회로 족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당시의 랍스터는 바다에 사는 바퀴벌레 쯤으로 여겨진 모양이다.


불과 몇 세기 만에 이뤄진 오늘 날 랍스터의 위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굳이 상세한 첨언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실은 나도 안 먹어봐서 모른다. 게와 새우 등 갑각류에 알러지가 있어 앞으로도 요원하다. 허나 설령 내게 간장게장조차 못 먹는 웬수같은 증상이 없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랍스터를 사주겠다 제의한다면 나는 일단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을 것이다. 뭐지? 앵두같이 앙큼한 내 입술이라도 노리는 것일까?


가끔 내가 수 세기 전 영국 해안에서 태어난 랍스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비하기엔 그 대상이 죄수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끔찍한 바다의 바퀴벌레. 지난 20여년 간 난 나 자신을 바꿔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려 했던 것 같다. 뻘짓거리였다. 한 번 박힌 사고 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 세대에는 모범택시에 잘못 타면 자칫 선산도 날릴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불콰하게 취한 밤 택시를 잡는 나를 마치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한다는 듯 기겁하며 붙들곤 한다. 정신차려, 이 차 모범이야! 아 그래봤자 몇 천원 차이야. 고집을 부려 택시를 타고 사이드 미러를 보면 저편에서 실연당한 로미오처럼 무릎을 꿇은 친구가 한 손으로 심장께를 부여잡고 한손은 쭉 뻗으며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모범이야아아아!


날 바꾸는 대신 내가 귀해질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가라는 것. 특히 최근 공장에서 손느리고 꼼꼼하지 못한 나이 많은 신입으로 100일간 일하며 얻은 깨달음 중 하나이다.


한 때는 수은이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랍스터가 바다의 바퀴벌레로 여겨졌던 것처럼 부당하고 납득할 수 없는 평가는 언제든 일어난다. 아무리 봐도 그럴 자격없는 이가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성과를 이뤘다 질시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것만큼이나 나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릴 필요 또한 없다.


그저, 출근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스타벅스에 와서 올초 생일 선물로 받은 기프티콘을 사용해 주문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묵묵히 써나가면 그뿐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쪼로로로록. 600원을 추가해서 그란데를 시킬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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