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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Dec 01. 2020

장사가 안 되는 곳은 이유가 있다

자영업자의 눈물

 장사가 안 되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팬데믹 시국이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밥벌이인 편의점 점장의 매일 아침 출근 후 첫번째 대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담배 재고 이상 없지? 거참. 출근해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매출 현황, 객층, 판매 상품, 진열 상태, 재고 수량, 창고 정돈 상태, 매장 내외부 청결, 유통기한 임박 상품, 날씨, 직원의 컨디션 등등이 아니라 고작 담배 재고라니. 아무리 봐도 장사할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저런 사람이 장사를 하게 된 걸까? 덕분에 어쩌다 담배 재고에 빵꾸라도 나는 날이면 점장은 거의 급성 심부전이라도 온 듯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그 앞에서 난 차마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말도 못하고 짊어진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곤 했다.


 담배는 판매량은 많아도 이익이 적은 대표적인 미끼 상품이다. 담배'만' 많이 팔아서 매출이 올랐다는 말은 비닐봉다리 값 20원 받아서 부자됐다는 말과 비슷한 가치를 가진다. 물론 미끼 상품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만 매출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담배 구매자로 인한 동반 매출 상승은 잘 체감되지 않으니 점장처럼 아무리 봐도 장사할 사람이 아닌 사람은 담배 두 보루 판매 이익과 한 갑 손실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만 2년 가까운 시간을 채우고 나니 조금은 점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아무리 봐도 장사할 사람이 아닌 것쯤은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장은 하여간 점장이 됐다. 그것이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비참해지기 위해서였음을 이제는 안다. 사흘 굶은 거지가 빌어 얻은 돈으로 빵이 아닌 로또를 사듯이.


 물론 그녀도 팔백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을 수 없었고 다른 칠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팔 명과 마찬가지로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아직도 1년 넘게 남은 기간동안 거둘 손해가 계약 파기금보다는 적어야 하니, 가엾은 점장은 아침마다 담배 수량이라도 확인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장사가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증상이라 보는 것이 옳았던 것이다.


 ...상기한 것이 내가 그 날 밤새 CCTV 화면을 돌려봤어야 했던 이유이다.


 늘 그렇듯 평범한 날이었다. 출근한 나는 매출 현황과 객층, 판매 상품이야 내가 점장은 아니니까 제끼고, 진열 상태, 재고 수량, 창고 정돈 상태, 매장 내외부 청결, 유통기한 임박 상품, 날씨, 그리고 커피에 담배를 피우며 나 자신의 컨디션을 확인한 뒤 담배 재고를 점검했다. 이런 시부럴, 에쎄 수 한 갑이 비었다. 나는 급성 심부전이라도 온 듯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점장과 그 앞에서 차마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말도 못하고 짊어진 가방끈만 만지작거리느라 퇴근을 못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은 반드시 에쎄 수 한 갑이 비는 이유, 혹은 그 범인을 찾아 점장에게 고하리라 마음 먹었다.


 첫번째 가설은 바코드 인식 에러다. 그곳을 포함한 널리 사용되는 데이타로직 바코드 리더기는 매우 넓은 인식 범위를 자랑하지만, 영점이 십자로 표시되는 가늠좌보다 아래에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단일 품목을 찍을 때야 문제가 없지만 서로 다른 두 갑 이상의 담배처럼 겹쳐 있는 바코드에는 취약해 한 담배만 두 번 찍히는 불상사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바코드에 찍히지 않고 판매된 다른 담배의 수량이 하나 남아야 정상이고, 또한 지난 24시간의 에쎄 수 판매 기록에 의하면 한 번에 두 갑 이상 판매된 적이 없었다.


 두번째 가설은 두 개를 줘놓고 하나만 찍고 판 경우이다. 금고 내 현금에 이상이 없으니 카드일 것이고, 카드로 결제한 에쎄 수 판매 기록은 세 건이다. 나야 그런 멍청한 실수를 할 리가 없으니 다른 근무자 시간의 두 건을 확인하기 위해 CCTV 영상을 돌렸다. 영상 재생 방법이야 딱히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될만큼 직관적이지만, 이곳 영상 기록의 시간은 실제 시각보다 38분가량 빠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한 갑은 점장이 또 한 갑은 오후 직원이 판매한 모양인데, 두 영상에서 담배를 건네주는 순간을 멈춰놓고 한참을 들여다 봤음에도 둘 다 실수 없이 한 갑만 준 것이 확실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세번째 가설은 총 여섯 건의 에쎄 수 판매 기록 중 결제 취소 건을 보고 떠오른 가설이다. 영상을 보니 점장이 퇴근한 직후 교대한 오후 직원이 판매 대기 목록에 올라 있던 에쎄 수를 취소한 기록이다. 그러니까,


 손님1이 와서 에쎄 수를 달라고 한다 - 바코드를 찍었는데 다른 상품을 더 고른 뒤 한 번에 결제하겠다고 한다 - 손님1이 물건을 고르는 사이 다른 손님2가 계산 한다 - 에쎄 수를 판매 대기 처리하고 손님2의 계산을 해준다 - 새로 고른 손님1의 상품을 판매 대기를 해소하지 않고 새롭게 찍는다 - 손님1은 결제한 상품과 결제하지 않은 에쎄 수를 챙겨간다 - 판매 대기 자체를 잊고 교대한다 - 교대생은 전달 받은게 없었으므로 영문을 알 수 없는 판매 대기를 취소한다 - 재고가 빈다


 ...하는 식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점장의 근무시간 동안 2, 3분의 짧은 시간 동안 두 건 이상의 결제가 이루어진 경우는 세 번 있다. 그 전후 5분을 포함해 총 30분의 시간을 처음엔 4배속으로 다음은 2배속으로 마지막으로 정상 속도로 세 번 씩 확인 해봐도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네번째 가설은,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도난이다. 담배 진열대의 특성상 결국 직원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전날 근무자 중 흡연자는 나를 제외하면 저녁 시간 직원 한 명 뿐이다. 20대 초반의 남자가 에쎄 수 같은 아저씨 담배를 피울 것 같지는 않지만, 뭐 그거야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러나 전날 저녁 타임 5시간을 8배속으로, 저녁 직원이 미심쩍은 행동을 할 때마다 0.5배속으로 줄여가며 관찰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제는 없었다.


 더 이상 떠오르는 가설도 없었다. 하릴 없이 영상 이곳 저곳을 눌러보다 중대한 발견을 했다. 나도 자주 쓰는 기능이 아니라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판매 대기 목록이 올라가 있을 때는 포쓰기 화면에 시간을 표시하는 상단바가 기존의 흰색에서 하늘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화질이 워낙 후져서 얼핏 똑같은 회색으로 보였지만, 화면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구분할 수 있었다.


 난 대기 해제 시점부터 30초씩 영상을 뒤로 돌리며 판매 대기 처리 시점을 찾았다. 5시간을 돌린뒤, 그러니까 30초에 한 프레임 씩 총 720 프레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일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품 발주를 끝낸 점장은 카운터 뒤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매장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아닌, 그냥 멍한 눈빛이다. 앞으로 1년 간 감당할 손해가 정말로 계약 파기금보다 적을 지 가늠해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담배를, 그렇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내 골머리를 썩게 했던 문제의 에쎄 수를 꺼내 바코드를 찍는다. 그 순간 손님이 들어왔고, 점장은 에쎄 수는 판매 대기 처리하고 그를 맞는다. 손님이 나간 뒤 점장은 카운터의 라이터를 하나 챙겨 직원 화장실에 가고, 잠시 후 돌아와 장사를 재개 한다. 물론 판매 대기 목록은 그대로 두고 말이다.


 ......


 몇 시간 후 출근한 점장은 언제나처럼 물었다. 담배 이상 없지? 난 그녀의 눈에서 대한민국 모든 자영업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과 불안, 그리고 아직 버리지 못한 아주 작은 희망을 봤다. 짊어맨 가방끈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없습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그 몇 분 전 내 담배를 사면서 에쎄 수도 한 갑 결제해서 수량을 맞춘 참이었다. 내 실수도 아닌데 30분치 급여를 날린 셈이지만 딱히 뭐 아쉬울 것도 없다. 세상에 아무리 봐도 장사할 사람이 아닌 사람은 부지기수지만, 아무리 봐도 살아갈 사람이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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