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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05. 2021

지능개발 따위 집어치워

개발인지 계발인지

 얼마 전까지 했던 일은 중고등학교를 돌며 학생들과 ‘게임’을 하는 일이었다. 각 조별로 미래의 가상 국가를 대표하여 생산, 제작, 무역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는 게임이었다. 난 그들 사이에 끼어 시세를 조정하거나 지나치게 희소한 상품을 시장에 풀거나 금융 사기 피해자를 구제해 주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이미 스마트폰이 필수품이고 수백억이 들어간 대작 게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과연 아이들이 이런 아날로그식 게임을 좋아할까?

 ...하는 건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심지어 참관하러 왔다가 참여하게 된 몇몇 선생들까지 포함해 다들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새삼 생각해보니 거래와 흥정이야 말로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장 깊은 역사의 전략게임 아닌가.

 애초에 흥정에 별 자신이 없는 난 나 자신을 보너스 상품으로 여기기로 했다. 자 친구들, 내가 파는 목재는 한 묶음 당 60금화에요. 세 묶음 필요하다고? 어디보자, 내가 숫자에 워낙 약해서... 육일은 육, 육이십이, 육삼십오. 그럼 150금화만 주면 되겠네. 맞죠? 아닌가?

 맞아요, 육삼십오 맞아요!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자지러졌다.

 세상에 존재하리라 생각치 못했던 즐겁고도 보람있는 밥벌이었으나, 마무리 시간은 늘 지루했다. 대표가 게임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앉혀놓고 오늘의 게임에서 익힐 수 있는 ‘교훈’을 새삼 강조하는 시간이었다. 거래의 기본 요건, 이득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최소화 하는 법, 신용도 관리 방법, 금융사기 예방법...

 마지막 날 밥을 먹다 물었다. 대표님,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신용도 관리니 공정 거래니 하느라 아이들의 즐거움이 희석되는 거 같은데요.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한테 돈을 주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잖아요.

 딩. 머리가 울리는 듯 했다. 동시에 어린시절 엄마를 졸라 손에 100원짜리 동전을 소중히 쥐고 콧잔등에 땀 맺어가며 달려간 동네 오락실 외벽에 늘 씌어져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지능개발’

 아아, 지능개발이라니. 던전 앤 드래곤, 황금 도끼, 테크모 월드컵(씨가 축구라고 불렀다), 쏘울칼리버,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명작을 플레이 하는 와중 대체 어느 누가 지능개발 따위를 신경쓴단 말인가?

 이제보니 그 문구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 즐겁게 놀아도 무언가 교훈이 있어야, 이득이 있어야 하는. 무언가를 얻고 남기지 않으면 용납하지 못하는. 모험심을 함양하거나, 지식을 넓히거나, 흥미를 얻거나, 체력을 단련하거나, 하다못해 지능개발이라도 해야하는. 아이들이 그저 순수하게 백퍼센트 즐겁기만 하는 꼴을 도무지 봐주지 못하는, 우리 못돼먹은 어른들 말이다.

 시국이 안정되면 전업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다. 뉴스로 흔히 접하는 흉흉한 소식과 달리 요즘 아이들 또한 순수하고 때타지 않아서, 값을 조금만 깎아줘도 내가 소지섭 닮았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는다. 이상하게 싫지 않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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