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롬 Jan 12. 2021

아비투스

나도 한 번 해보자 책 소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고 자원의 비축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즉 ‘문명’이란 것이 시작된 시점부터 수천 년이 지난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가진 체제는 단 한 가지였다. 생산되는 자원의 대부분을 극소수의 상위계층에 집중 분배하는 방식이다. 부족정 귀족정 왕정 공화정 민주정. 때에 따라 이름은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런 추세는 시대가 갈 수록 강해진다. 우리가 수백 년 전 아일랜드의 감자 캐는 농노보다야 풍요롭게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농노와 당시 영국 왕의 차이보다 우리와 재벌의 차이가 훨씬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또한 언제나, 하위 계층은 중위 계층으로, 중위 계층은 상위 계층으로의 이동을 시도, 혹은 꿈꾸기 마련이며, 상위 계층은 이에 맞서 계층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이 역시 언제나 상위 계층은 길가에서 우연히 금덩이를 주운 운 좋은 사람이 쉽게 자기 무리로 편입될 수 없도록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에 맞먹는 거대한 장벽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아비투스라 한다.


 아비투스란 중하위층과 구분되는 상류층 만의 언어와 행동과 습관과 지식과 교양과 에티켓과 매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비물질적 자산을 말한다. 한 사람의 성격이 확정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그가 태어나기 100년 전이라고 했던가. 아비투스는 단순한 재산 증식만으로도, 단기적으로도, 세대를 거치지 않고도 함양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가지지 않은, 단지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운 경우는 ‘진짜’ 상류층으로부터는 물론, 심지어 중하류층으로부터도 은근한 멸시와 조롱을 받곤 한다. 우리 또한 이를 간단히 표현한 유서깊은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졸부라고.


 그렇다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하위층에 속하는 우리가 아비투스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적응하는 것? 극복하는 것? 무시하는 것? 파괴하는 것? 개인의 최선의 선택과 공동체의 그것이 일치할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일치시키는, 적어도 타협할 수 있는 제 3의 길은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다면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일 거라 지레 짐작했다. 본 책을 읽기 전엔 말이다.


 실상은 길에서 운 좋게 금덩이를 주운 사람, 혹은 상승욕구를 가진 사람, 혹은 상류층을 꿈꾸는 사람의 아비투스 속성 함양을 돕는 실용서적에 가깝다.


 물론 그것이 무가치하다 평가절하 하진 않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약간의 의아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왜 이 책의 저자는 아비투스에 대한 나의 결론이 자신과 같을 거라 확신하는 거지?


 난 내가 가지고 있는 혼혈적 아비투스를 충분히 누리며 살 생각이다. 재계와 정계의 고위층이 모인 고급 파티에서의 세련된 농담도, 노가다판 김씨 아저씨의 질펀한 야한 농담에도 똑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뭐 한 번 쯤 읽어볼만한 책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아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 한다면, 꼭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읽으라 주문하고 싶다. 실용서적, ‘아비투스’다.

작가의 이전글 지능개발 따위 집어치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