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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19. 2021

킹스 스피치

나도 한 번 해보자 영화 소개

 흔히 사극에서 왕을 부르는 호칭을 ‘폐하’라고 한다. 폐(陛)란 왕이 있는 궁궐 앞 계단의 섬돌을 말하며, 폐하는 본래 섬돌 아래에 서서 왕에게 말을 전하고 또한 왕의 말을 신하들에게 전하는 직책을 뜻했다고 한다. 왕이란 워낙에 존귀한 존재라, 제 아무리 상급 관료라 한들 평범한 인간과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는 건 가오가 떨어진다 여긴 모양이다.


 거 왜, 땅바닥을 딛는 걸 금기시 했다던 잉카의 왕이나 하루에 일곱번씩 목욕재계를 했다는 일본의 왕이나 나일강에 대고 자위행위(!!!)를 했다던 고대 이집트의 왕을 봐도 역시나 왕이란 남다른 퍼포먼스로 가오를 잡아야 했던 것이다.


 해서 고대의 왕과의 대화는 늘 폐하를 거쳐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는 간소화 됐지만, 왕과 대화할 때는 늘 말을 전해주는 가상의 인물이 있다고 상정하여 ‘폐하’라는 단어로 시작하게 됐고, 곧 그 단어는 왕을, 진시황 이후엔 황제를 뜻하는 2인칭 대명사가 된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왕의 지배 영역은 팽창했고, 도리어 그 신성의 아우라는 빛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왕, 세계 구석구석에 자신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류 최초의 초강대국 영국을 다스렸던 조지 5세에 이르러 왕은 ‘폐하’, 혹은 칙서나 포고꾼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 아닌 살아있는 육성을 통해 모든 국민들에게, 말 그대로 직위고하와 빈부를 막론하고 본토부터 해외 영토 심지어 전선의 군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고해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야, 영화 첫장면에서 조지 5세의 투덜거림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날의 왕은 위엄있게 차려입고 말 위에 앉아 있으면 그만이었지. 이젠 집집마다 찾아가 환심을 사야해. 왕실의 위상은 떨어졌고 이제 우린 광대가 돼야만 해.’


 남다른 혈통을 이어받은 존귀한 존재라서가 아닌 의무를 행하기에 대우를 받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왕. 조지 6세... 아니, 아니. 버티와 그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 <킹스 스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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