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기 밥상 한 번 차려본 적 없는 양반'이라지만 그야 그 밥상 전담이었던 어머니 입장이고, 기억을 신중히 더듬어보면 내겐 아비가 자기 먹을 밥상을 차려본 적이 몇 번쯤은 있다.
라면 등을 제외하면 아비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단 한 가지였다. 사실 요리라기보단 조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그저 먹다남은 콩나물 국에 썰어낸 김치와 찬밥을 말아넣고 끓이는게 다였다. 뭉근하게 오래 끓이면 걸쭉한 꿀꿀이죽 같은 물건이 나왔다. 어린 나는 그것이 되는데로 만든게 아닌 원래 있는 음식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아비는 발끈했지만 그도 자신이 한 정체불명의 음식의 이름을 몰랐기에 제대로 반박하진 못했다.
어머니가 외출, 혹은 가출하고 없는 주말, 어린 나와 아비는 예의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죽도 콩나물도 김치도 싫어하는 내겐 고문이 따로없었다. 그러나 아비는 어린 내가 아빠, 왜 울어? 하고 물을만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순식간에 서너그릇씩 해치우곤 했다.
그게 '갱시기'라는 이름의 경북지역 향토음식이라는 것은 나중에 커서 알았다. 아비가 그 지역이 고향이었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이었을 것이다.
죽과 콩나물, 김치, 그리고 갱시기 다음으로 피자를 싫어하는 나지만 요즘엔 두어달에 한 번 씩은 피자를 시킨다. 피자는 겨우 두어조각 먹고 며칠 뒤 버리기 일쑤지만, 싸이드로 딸려오는 버팔로윙을 못 견디게 먹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넘쳐나는 프렌차이즈 치킨은 안타깝게도 결코 싸구려 피자집 버팔로윙의 맛을 재현하지 못한다. 밑간이나 염지 따위 하지 않음은 물론, 심지어 익은 듯 안 익은 듯한 닭에서 우러나오는 '생내'가 내가 원하는 버팔로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을 때, 특히나 초반 몇 주 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던 멜번에서, 한국으로 돈을 보내고 나면 한동안 내 주식은 버팔로윙이었다. 어느 마트에서나 싼값에, 시간 맞춰 잘 가면 떨이로 반값에 팔았고, 렌지에 돌리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었으며, 아껴먹으면 한 팩으로 세 끼니 정도는 기름진 고기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싸고 양 많은 만큼 맛은 형편 없었는데, 특히 끔찍했던 건 그 익은 듯 안 익은 듯한 생내였다.
그것이 훗날 그 무엇보다도 호주를 떠올리게 할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내나는 버팔로윙을 입에 물면 눈 앞에 멜번 도심에 흐르던 야라강물의 물결이 가득찬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찬찬히 되짚어 보면 별로 놀지도 못하고 내심 기대했던 특별할 것도 없이 뼈빠지게 고생만했던 호주에서의 생활이 이따금 못 견디게 그리워지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우는 것으로 보일만큼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갱시기를 먹던 아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아비는 그깟 꿀꿀이죽 같은 갱시기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가난과 학대로 점철됐던, 떠올리는 것만으로 진저리를 치면서도 가끔은 못 견디게 그리웠던 유년기들 되짚어 보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