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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Mar 09. 2021

분향

공익이 아니라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십여 년 전 내가 사동 노릇을 했던 복지관은 가양동의 낡은 복도식 임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하루는 그 아파트 십오층에서 노인 한 명이 투신했다. 나야 물론 불치병에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천년이고 만년이고 악착같이 살아남을 참이지만 그렇다고 노인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개방되어 있는 아파트 복도, 길 건너엔 새하얗게 칠한 일반 아파트, 그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한강,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 아파트 그늘에 가려 아직도 꽃눈을 틔워내지 못한 앙상한 나무, 그런데 하늘은 맑지 햇빛은 눈부시지, 현관문을 열면 세찬 주먹처럼 얼굴을 강타하는 미지근한 악취에, 그러자면 거친 세상 이렇게나 버텨봤더니 남은건 냄새나고 초라한 안식처 몇 평, 그나마도 관리비가 밀려 쫒겨나게 생겼으니 새삼 인생이 비참하고, 그러고보니 아파트 복도의 난간 구석에 있는 왜 있는지 몰랐던 기다란 홈이 투신자가 발을 딛으라고 있는 거였구나 하며 몸을 날리게 되겠지. 의도는 상승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육체는 추락했다.


 이튿날엔 점심시간 도시락 배달을 가다가, 어쩐지 배달용 카트가 도시락 하나만큼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그 새 힘이 세졌나. 마지막 도시락을 배달하고, 멀리 한강 조각의 물결이 보이는 아파트 십오층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강바람이 겁나게 불어와 불 붙이기가 힘겨웠다. 한쪽으로만 타들어가는 담배를 빨고 후 불었다. 담배 연기가 조각조각 부서진다. 며칠째 음주로 다 헐어버린 입 안이 쓰렸다. 털어낸 담뱃재는 바람타고 잿빛 나비처럼 팔랑팔랑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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