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파는 사람은 마음씨도 곱다

by 김바롬

꽃을 파는 사람은 마음씨도 곱다. 입사 후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의 일이다. 생애 첫 그리고 뒤늦은 직장 생활이었고 텅 빈 머리에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지만 난 생전 처음 알게 된 것들을 우겨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번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귀빈들을 모시고 미팅을 한다고 했다. 올해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도 했다. 그토록이나 중요한 행사인데 왜 난 바로 전날에야 알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대관부터 책상 등의 기물 재배치에 발표에 쓸 기기와 케이블 설치에 구색을 맞출 케이터링 업체 선정과 소통 하다 못해 참석자 앞에 설치할 명패 제작까지, 그러니까 신입이 아닌 사람의 몸값으로 적절하지 않은 잡무는 대부분 내 몫이었다. 명패 글씨체를 궁서체로 했다고 욕을 먹은 것 외에는 큰 사고 없이 준비를 마쳤다. '하여간 궁서체는 아니'라니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쯤이야 직장인에겐 끼니보다 잦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론 준비를 마친 것은 내 생각이었다. 행사 예정공간을 뒤늦게 둘러보던 누군가(회사 내의 모든 사람은 나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거야 주지의 사실이다)가 자기 팔이 떨어져 나간 걸 뒤늦게 깨달은 노르망디의 병사처럼 대경실색하며 외쳤던 것이다. 와인 바스켓은 어디갔어?!


뭐 그러니까 와인과 샴페인을 준비하도록 하면, 와인 바스켓이야 '당연히' 준비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그 때도 알고 있었지만, 직장인이라면 때론 당연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후 한시간 동안 와인과 얼음을 담을만한 철제 바구니를 찾아 공덕역 부근을 미친듯이 헤집고 다녀야 했다. 그야 진작 말해줬다면 구비해뒀을 테지만, 일이 코 앞에 닥치고 나서야 받는 지시라야 직장인이라면 물마시는 것보다 잦다는 것쯤 또한 이제는 안다.


다이소와 롯데마트에도 없고, 알파나 오피스디포에도 당연히 없고, 근처 철물점을 검색해볼 때 쯤에 나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와인 바스켓이었다. 엉뚱하게도, 안에는 꽃이 꽂혀 있었다.


누가봐도 와인 바스켓으로 안성맞춤인 것에 뜬금없이 꽃이 꽂혀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짧지 않은 시간 끝에 그게 꽃집의 진열된 상품임을 깨달았다. 앞 뒤 잴 것도 없이문을 박차고 들어가, 꽃집에 웬 강도지 싶은 표정으로 휘둥그레 눈을 뜬 여사장님께 '꼼짝마! 있는 돈 다 내놔!'하는 억양으로 외쳤다. 저기요! 밖에 저 꽃 꽂은 빠께쓰요. 파는 건가요?


온몸에 김을 모락모락 피워낼 듯 땀범벅이 되어 짐승처럼 숨을 몰아쉬는 내 모습에 압도되었는지, 사장님은 더듬거리며 겨우 답했다.


- 아뇨, 파는 거 아닌데요.


다 년 간의 편돌이 경험 동안 안 되는 걸 되게 해달라 떼쓰는 것만큼 보기 흉한 것도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나는 이제야 입사 한 달이 된 신입 사원이었다.


- ...그럼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반지원정대급 모험 끝에 와인 바스켓을 구해왔지만, 딱히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 다들 바빴으니까. 어째 내게 영문모를 연민을 품고 있는 듯한 우리 팀장만 '와아, 역시! 역시 수완이 좋아! 안 파는 물건을 빌려서 오네! 역시! 여윽시 수완이 좋아!' 하고 다들 들으라는 듯 오버했지만 물론하게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난 팀장에게 다가가(귀를 잡고 끌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속삭일 수 밖에 없었다. 팀장님.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 하세요.


예의 본래 찌그러지고 버려질 때까지 꽃을 담을 운명이었던 와인바스켓이 어느정도의 기여를 했는지야 미지수지만, 뭐 하여간, 행사는 무사히 마쳤다.


모두 방금 전 행사를 회고하며 남은 케이터링 음식을 나눠 먹는 동안, 난 주방 부뚜막에서 끼니를 때우는 식모처럼 구석에서 버팔로 윙 몇 개를 뜯어먹다 눈치를 보며 여러 음식을 챙겨 와인바스켓 안에 쟁여두었다.


늦은 퇴근 길엔 챙겨둔 음식과 따로 산 커피까지 와인바... 아니, 꽃 담는 바스켓에 넣어 꽃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마치 은촛대를 돌려주러온 장발장을 마주한 신부처럼 이채로운 눈빛의 사장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꽃을 파는 사람은 마음씨도 곱다. 나는 그제야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순전히 '실용적' 용도로만 따지면 전혀 쓰임이 없는 꽃을 파는 가게들이 왜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지, 나 아닌 누군가는 꽃을 사고 또 누군가는 꽃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 하는, 순전히 '실용적' 용도로만 따지면 전혀 쓰임이 없을 하나하나한 말들이 사람살이를 굴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이제보니 꽃을 사는 사람 또한, 마음씨가 고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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