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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09. 2022

대서소와 전문작가

저물어버린, 저물어가는 것들

 어린 시절, 그 뒤로도 수십 년은 더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반드시 버스를 타고 노량진을 지나야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므로 지루함을 달랠 유일한 길은 창밖에 지나가는 간판을 읽는 것 뿐이었는데, 딱히 특별한 디자인이 아니었음에도 눈길을 끄는 간판이 하나 있었다.


 '대서소'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대서소란 대서, 즉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란다. 주로 출생이나 사망신고서, 혼인과 이혼신고서, 진정서, 탄원서, 고소장 같은 것을 대신 써주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과 달리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라 그런 영업이 가능했을 게다. 한 때는 관공서 근처라면 어김 없이 그런 대서소가 빼곡히 자리잡았다고 한다.


 한 때 흔한 것이 대게 그러하듯 거의 모든 대서소는 사라져버렸고, 그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을 예의 노량진 대서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더 이상 문맹률이 높지 않다는 것, 그나마 지금껏 의미있는 대서소의 역할은 법률 사무소 같은 곳에서 다 가져가 버린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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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전문작가의 운명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는 더 이상 골방에서 글을 쓰고 극히 제한된 통로를 통해서만 읽히는 시대가 아니다. 단 한 명이 글을 쓰고 만인이 읽는 시대도 아니다. 생각과 감정을 굳이 외주 주는 시대 또한 아니다. 만인이 글을 쓰고 만인이 읽는 시대,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은 내 일이 아닌'게 아닌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사라져버린 대서소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것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고, 그저 모든 것이 그렇듯 변해가는 것일 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 작가라는 것은 사라질테지만,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은 오히려 더 많아질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조금씩은 작가여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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